[커버스토리] 무료배달, 값싼 공공요금…달콤한 유혹의 결말은?

입력 2024-10-14 10:02   수정 2024-10-14 15:44


음식점 등의 매장 판매가격과 배달 판매가격이 다른 ‘이중가격제’가 요즘 큰 논란입니다. 배달 플랫폼 업체가 ‘무료 배달’을 내세우면서도 입점 업체로부터는 중개 이용료를 대폭 올려 받기 시작한 게 발단이 됐습니다. 입점 업체로선 많게는 매출의 30% 가까이를 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는 배달 판매에 무방비로 있을 수만 없었죠. 결국 배달 주문 때는 가격을 10% 안팎 더 올려 받으면서 사달이 난 겁니다. 배달비 무료를 반기던 소비자도 “뭔가 속임을 당한 것 같다”는 격앙된 반응입니다. 이중가격이라는 왜곡된 가격구조는 시장에 많은 혼란을 부르고 소비심리를 싸늘하게 만들 수 있어 큰 문제입니다.

이번엔 공공요금 얘기인데요, 전국의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이 하반기 들어 잇달아 상수도 요금을 10% 안팎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전기·가스요금에 이어 수돗물값까지 오른다고 하니 고물가 주름살이 더 늘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2017~2018년부터 수도요금이 동결돼 그동안 값싼 수돗물을 써왔다는 게 정확한 팩트입니다. 수돗물 생산 비용이 오르면 경제 원리에 맞게 요금을 인상하는 게 옳지만, 민생의 어려움을 돌본다는 핑계로 가격을 통제하다 급격히 인상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겁니다.

상품 가격이 시장원리대로 결정되지 못하는 가격 왜곡 문제는 소비자의 막대한 피해, 후생의 감소를 필연적으로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문제를 4·5면에서 좀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소비자에게 부담 떠넘기는 이중가격
시장 효율, 원활한 자원배분 방해하죠
배달서비스를 받을 때 생겨나는 이중가격 문제는 경제 원리로 뜯어보면 납득 못 할 일도 아닙니다. 직접 매장을 찾아 음식 등을 사지 않고 집에 편안히 앉아 배달받으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건 당연한 이치죠. 그동안은 이를 배달 비용으로 지불했는데, 이른바 ‘무료 배달’이 도입되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중가격 속에 숨어든 게 문제입니다. 소비자는 가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공지받지 않으면 여전히 자신은 ‘배달비 공짜’ 혜택을 받고 있다고 여기겠죠. 이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이고, 민감한 생활 밀착 서비스에서 벌어지는 일이어서 파장이 적지 않아요.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대통령실까지 나서 대책을 강구 중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금 구매 때 할인은 ‘불법’

이중가격제는 대개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내면 물건값을 깎아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게 대표적 이중가격입니다. 판매자(공급자) 입장에선 현금 판매를 하면 신용카드 회사에 내야 하는 수수료를 줄일 수 있고, 그만큼을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돌려주겠다며 이중가격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런 제안 속엔 거래 자료를 숨겨 세금을 탈루하려는 판매자의 의도가 있는 게 일반적입니다. 현행 여신전문금융업법도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신용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제19조 1항)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현금 구매 때 물건값을 깎아주는 이중가격은 불법이란 얘기입니다.

유통구조가 달라서 생기는 이중 유통가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휘발유 제조회사가 직영 주유소와 독립적인 주유소 간에 휘발유 공급가격을 달리 책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불법은 아닌데, 이중 유통구조를 지닌 회사가 직영점 외의 유통 채널에 일정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당국의 제재를 받습니다. 경쟁제한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이중가격은 가격구조를 왜곡시켜 원활한 자원배분을 막고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 도로 위에 신호등(가격)이 2개가 있고 각기 다른 신호를 발신한다면 도로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을 겁니다. 시장과 그 안의 거래 원칙은 가능한 한 단순한 게 최선입니다.

시장지배력에 달린 가격 전가

배달서비스 이용과 관련한 이중가격제는 ‘가격 전가’의 예로 볼 수 있습니다. 가격 전가란 일반적으로 최종 상품 생산자가 원재료 등의 가격 상승분을 제품 판매가에 반영해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물가 상승분만큼 가격을 올리는 게 대표적입니다. ‘조세 전가’라는 말도 많이 들어봤을 텐데요, 상품이나 서비스 공급자가 자신이 내는 세금을 판매가격에 반영해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전가 행위 그 자체는 합법·불법의 판단 영역이 아닙니다. 다만, 어느 정도로 전가가 가능한지가 관심을 끕니다. 이는 수요의 가격탄력성에 크게 좌우됩니다. 즉 공급자 우위 시장이냐, 수요자 우위 시장이냐에 따라 전가의 정도가 달라지는 거죠. 공급자가 우위에 있고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낮다면 전가력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 인기 높은 음식점이나 프랜차이즈업체는 가격 전가력이 높을 것이고, 이중가격을 유지해도 수요가 크게 줄지 않을 겁니다.

참고로 환율이 변동해 수출품이나 수입품의 가격이 오르내리는 것을 특별히 ‘환율 전가’라고 부릅니다. 환율 전가는 무역수지를 인위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환율에 개입하는 경우 그 효과를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국제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다룹니다. 일반적으로 특정 국가가 환율을 떨어뜨리면(통화 평가절상) 수출품 가격이 비싸지고 수입품은 저렴해집니다. 그러면 무역상대국의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죠. 그러나 1985년 일본 엔화를 달러당 120엔대에서 80엔대로 급격히 평가절상했을 때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미국 쪽으로 수출한 일본 제품의 가격이 크게 높아지지 않았던 거죠. 일본의 수출기업들이 엔화 절상을 원가 절감과 이윤 축소 등으로 흡수해 환율 전가가 충분하게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NIE 포인트
1. 가격 왜곡이 효율적 자원배분을 교란시키는 경로에 대해 공부해보자.

2. 조세 전가, 환율 전가의 사례를 찾아보자.

3. 배달서비스와 관련한 이중가격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포퓰리즘이 부른 가격통제의 그림자
국민 경제 힘들게 하는 부메랑 돼
다음으로 전기·가스·수도 등 공공요금에서 나타나는 가격통제와 그에 따른 부작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주도형 성장전략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기업 경쟁력, 물가안정을 위해 전기 등을 값싸게 공급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공공요금의 원가와 실제 판매가격 간 차이가 너무 벌어진 거죠. 원가보다 싼 공공요금은 필연적으로 초과수요를 낳습니다. 국내 산업구조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데 익숙해졌고, 일반 국민도 전기를 물 쓰듯 낭비하게 됐습니다. 전력 생산과 관련한 가격 왜곡이 결국 시장실패를 불러온 겁니다.

가격통제가 적자 공기업 양산

국제 원자재 시세가 급등락할 때 이를 공공요금에 바로 반영하지 않고 흡수했다가 가격이 안정을 찾을 때 요금을 조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게 공기업의 역할이자 임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민생의 어려움을 핑계로 싼 공공요금을 유지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계속 펼칠 경우, 서비스 제공 공기업의 적자 누적과 경영상 애로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는 지금도 전기와 가스를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구조입니다. 발전자회사로부터 전기를 사 와 고객에게 공급하는 한전은 2022년 기준으로 100원에 전기를 사서 64원에 팔고 나머지 손해는 감수했습니다. 한전과 가스공사가 각각 202조원과 44조5000억원이란 천문학적 규모의 빚더미(총부채)에 올라 있는 이유입니다. 이는 철도공사·수자원공사·도로공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철도요금은 13년째, 고속도로 통행료는 9년째, 상수도요금은 8년째 동결돼 있습니다. 한전, 가스공사까지 포함한 5대 인프라 공기업의 총부채 규모는 작년 말 기준 320조원을 돌파했습니다. 공기업 적자가 심각해지면 최종적으론 정부가 추가 자본출자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는 결국 국민 세금에서 나와야 할 돈입니다.

오랜 기간 공공요금을 동결했다가 손쓸 수 없는 상황에 몰려 큰 폭으로 요금을 올리면 국민이 느끼는 부담은 더 커집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분기에 한 번씩 조정할 수 있는 전기요금을 한 차례만 빼고 계속 동결시켰습니다. 전국 지자체들의 잇따른 수도요금 인상도 문 정부 이후 한 차례도 인상하지 않고 요금을 틀어막아온 결과입니다. 지자체들은 수돗물 공급에서 밑지는 장사를 하는 바람에 낡은 수도관을 제때 정비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전국에서 매년 7000억원어치의 수돗물이 새어나가고 있습니다.

약자 보호 못하는 정부 개입

정부 등 공공부문이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사례는 공공요금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계부채를 관리한답시고 민간은행의 대출금리에 ‘이래라저래라’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금융감독원은 대출금의 가격인 금리 결정을 통제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론의 풍향계만 쳐다보다 보니 창구 지도에도 일관성이 없습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내리라고 했다가, 대출이 급증하자 다시 인하를 자제하라며 오락가락하는 가격통제 행태를 보였죠.

문재인 정부 때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연 40% 이내’이던 법정 최고이자율을 법 개정을 통해 ‘연 20% 이내’로 낮췄습니다.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는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최저임금제 운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동시장의 수급 상황을 봐가며 정해야 할 최저임금을 문 정부는 ‘집권 기간 내 1만원’이란 목표에 꿰맞추려 했죠. 2017년 당시 6470원이던 최저임금을 2022년 9160원으로 급격히 끌어올리는 바람에 최저임금을 주지 못하는 기업인이 속출했습니다. 전체 근로자의 13.7%가 아직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정부가 사회적 약자 보호에 과도하게 기울면 공공요금과 공공적 성격의 가격 결정에 무리하게 개입하게 됩니다. 이는 눈에 잘 띄진 않지만 경제의 전체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대가인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한 가격통제는 시장 기능을 마비시킨다. 서민과 노동자를 위하겠다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그들을 곤궁하게 만들 뿐”이라고 갈파했습니다.
NIE 포인트
1. 우리나라 전기·가스요금이 어떻게 변동해왔는지 알아보자.

2. 한국전력은 뉴욕증시에 상장된 공기업이다. 이런 기업에 가격통제를 해도 될까?

3. 선의를 담은 정책이 당초의 약자 보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뭘까?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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