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워요/ ‘축일(祝日)’ ‘제일(祭日)’ ‘데-’ ‘씨슨’ 이 위에/ 가갸날이 났어요. 가갸날/ … / ‘데-’보다 읽기 좋고 ‘씨슨’보다 알기 쉬워요/ … /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계집 사내도 가르쳐줄 수 있어요.” 만해 한용운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6년 ‘가갸날’의 탄생 소식에 벅찬 심정으로 그 감격을 노래했다. 승려이면서 독립운동가이자 시집 <님의 침묵>으로 너무도 유명한 그가 한글 예찬론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가갸날’은 한글날의 처음 이름이다. 한글날의 유래는 일제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3·1운동 직후인 1921년 한글학자 주시경의 제자들이 중심이 돼 조선어연구회라는 민간단체를 결성했다. 여기에 최현배, 이병기, 이윤재 등 한글학자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민족운동단체로 발전했다. 이들은 당시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일로 삼아 그 정신을 기리기로 했다. 그때가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이다. 당시만 해도 ‘한글’이라는 명칭이 일반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았기에, 한글을 처음 배울 때 읊는 ‘가갸거겨…’에서 착안해 ‘가갸날’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2년 뒤인 1928년 지금 같은 한글날로 명칭이 바뀌고, 날짜도 양력으로 10월 28일로 결정되었다. 한글날이 지금처럼 10월 9일로 된 것은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된 덕분이다. 이 책 말미에 ‘정통 십일년 구월 상한(正統 十一年 九月 上澣)’에 책으로 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음력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반포일로 추정하고, 이를 다시 양력으로 환산해 나온 게 10월 9일이다.
올해 ‘한글날’(10월 9일)은 제578돌을 맞았다. 세종대왕이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에 이를 반포했다. ‘한글날’은 그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578주년이란 숫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글날은 창제보다 반포에 더 방점이 찍혀 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역사에 처음 나타난 것은 <세종실록>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 자 기록에서다. “이달에 임금께서 몸소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내니 … 이것을 훈민정음이라 부른다(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 … 是謂訓民正音)”라는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북한에서는 이를 토대로 양력 날짜로 계산해 1월 15일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정해 ‘조선글날’로 기념한다.
우리나라는 창제일이 아니라 반포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당시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는 기록만 있을 뿐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문제점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3년 뒤인 1446년 9월(음력) 비로소 <훈민정음>(해례본)이라는 책이 완성됐고, 이를 반포로 보는 것이다. 이는 <세종실록> 1446년 (세종 28년) 음력 9월 자로 기록된 “이달에 훈민정음이 완성됐다(是月訓民正音成)”라는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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