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R&D 할수록 리스크…20년전 '상장규제'가 성장 저해

입력 2024-10-11 17:29   수정 2024-10-12 02:16

올해까지 상장 규정을 못 지키면 내년 관리종목에 편입될 가능성이 있는 기술특례 상장 바이오 기업이 9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선 까다로운 상장 규제가 바이오업계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규제로 상장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 회수 시장이 막히면 바이오업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상장 바이오 기업 투자 시장도 막혀 악순환이 이어진다.

11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매출 30억원 미만이 지속돼 올해 관리종목 편입 유예 기간(5년)이 끝나는 코스닥시장 상장 바이오 기업은 총 8곳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2곳은 거래가 정지됐고 6곳은 주식시장에서 거래 중이다. 거래소 상장 규정에 따르면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법인세 비용 차감 전 당기순손실’(법차손)이 발생하거나 매출 30억원 미만 혹은 자본잠식률 50% 초과 시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올해 법차손 요건에 걸려 관리종목 편입 유예 기간(3년)이 끝나는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은 총 3곳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2005년 기술기업 상장을 돕는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20년 전 틀이 바뀌지 않다 보니 혁신 바이오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차손 요건은 신약 개발이 진척돼 연구개발(R&D)과 임상이 진행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바이오헬스 분야 기술평가 특례상장 기업의 83%가 법차손 요건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조완석 더올회계법인 대표는 “신약 개발에 최소 10년이 걸리는데, 한국에선 R&D를 하면 할수록 경영 리스크가 커진다”며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갈라파고스 규제’”라고 지적했다.

매출 요건의 경우 기업이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쓸데없는 인수합병(M&A)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다수의 신약 개발 기업은 매출 요건을 맞추느라 제빵·화장품·건강기능식품·손세정제 회사 등 엉뚱한 기업을 인수했다.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미국·유럽 기업과 경쟁하려면 10년간 한 우물을 파도 모자란데, 국내 상장 규정은 신약 개발 본업에 집중하기 어렵게 돼 있어 결국 ‘불량 기업’만 생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법차손 산정 시 R&D의 자산화 범위를 확대하고 매출액 요건도 완화해줄 것을 수차례 금융감독원에 건의했지만 개인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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