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졸업 후 가스미가세키(도쿄도 지요다구에 있는 일본 제일의 관청지구)로 이어지는 일본 엘리트 관료의 전형이 무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종신고용, 연공서열로 상징되던 일본식 고용이 변화에 직면하면서 도쿄대생들이 선호하는 취업처도 변하는 추세다.
일본 주간지 아에라 지난 12일 인터넷판에 따르면 2024년 봄 실시된 국가공무원 시험(종합직)에서 합격한 1953명 중 도쿄대 출신은 189명에 불과했다. 2012년에 현재의 시험 제도가 도입된 이후 최소치다. 이는 2014년 봄 시험의 도쿄대 합격자(438명)의 절반 아래로 떨어진 숫자다. 이에 관해 전 노동성(현 후생노동성) 출신으로 최근 '몰락하는 관료-국가공무원 지원자가 제로가 되는 날'이란 책을 출간한 니카노 마사시 고배가쿠인대학 교수는 "도쿄대를 졸업했다는 학력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도쿄대생들은 보다 짧은 기간에 자신이 원하는 스킬을 습득할 수 있는 취업처를 선택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면에서 비효율적인 중앙 부처는 기피 대상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도쿄대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 외국계 컨설팅 회사다. 일부러 벤처 기업에 취업하는 도쿄대생도 있다. 이들은 몇 년의 재직 기간 동안 자신이 그린 성과를 얻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도쿄대생들의 관료 기피 현상의 요인은 또 있다. '블랙 가스미가세키'라고 불리는 공무원 사회의 구태의연한 근무 방식이나 인사 평가 제도가 그중 하나다. 물론 일본 관료사회의 과도한 업무량도 요즘 도쿄대생들이 공무원이란 직업을 기피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관료의 사명감을 지탱해주는 '보람'이 가스미가세키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게 아에라의 진단이다. 비(非)도쿄대 출신이었던 마사시 교수는 도쿄대 출신이 주류였든 재직 당시 관료사회에서 비주류에 속했지만, "다양한 스터디그룹이 열려서 젊은 관료들도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담론의 장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고도 경제성장기의 가스미가세키는 관료들이 정책을 입안하고 정치인을 이끄는 게 대세였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행정 개혁이 시작되면서 무게추가 '정치'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정치인의 국회 답변 작성이나 국회 대응과 같은 이른바 '하청 업무'는 점점 늘어나게 됐다. 마사시 교수는 "관료가 엘리트로 여겨진 것은 도쿄대생이 많았기 때문인데, 그 전제가 무너지면 엘리트 관료 신화도 깨질 것"이라며 "엘리트 신화가 무너지면, 탁월한 인재는 더 이상 오지 않을 테고, 관료의 업무 질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게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송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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