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다음 날인 지난 11일 영국 런던. 소설가 한강의 책을 구입하기 위해 런던 대표 서점 세 곳의 재고를 실시간 파악하며 움직였으나 이동하는 사이에 책은 다 팔려나갔다.
대형 서점 포일스의 소설코너 직원은 “노벨상 발표가 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와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등 비치된 책을 다 사 갔다”며 “아마 런던 어디를 가도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영어판뿐만 아니라 한국어판도 다 팔렸다. 한강 책을 사려고 서점을 찾았다는 제임스는 “한글을 잘 모르지만 <채식주의자> 한국어판을 구입하려고 했는데 없다고 한다”며 “언젠가 한글로 된 한강의 글을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사정은 워터스톤스 피커딜리점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같은 곳이다. 20만 권의 책을 갖췄으며 런던을 넘어 유럽 전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워터스톤스 피커딜리점 소설코너 직원은 책을 사려면 “아침마다 들러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여기는 런던,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 도시여서 당분간 한강 작품은 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오늘 문을 열자마자 엄청난 수의 사람이 줄을 서 다 사 가버려 종일 (한강 책 어디 있느냐는) 질문만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왕실 납품 서점으로 알려진 해처드의 한 직원은 “노벨상 발표 직후 풍경이 영화 같았다”고 했다. 그는 “어제 오후 1시에 노벨상 발표가 나자마자 갑자기 사람이 몰려 들어오더니 서점에 있던 한강의 책을 쓸어갔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의 팬이라는 그는 “<채식주의자>를 읽고 깊이 감동해 주변에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다”며 “전에 본 적 없는 소설이었다. 강렬한 내용과 별개로 인간의 몸, 여성성을 다루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표현이 아름다웠고 시적이었다”며 엄지를 세워 보였다.
영국의 뜨거운 반응은 한강과의 인연도 영향을 미쳤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가 영국인이다. 게다가 한강은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2016)도 받았다.
한강의 인기는 미국에서도 뜨거웠다. 미국 전역에서 매진 행렬을 이루고 있다. 미국 최대 e커머스 플랫폼 아마존에서는 한강의 작품이 줄줄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채식주의자>는 아마존의 문화 소설 부문 판매량 1위를 차지했고, <소년이 온다>는 에디터 추천 작품 목록에 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서점 반스앤드노블의 점원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원래도 인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다른 책까지 매진됐다”며 “판매량이 워낙 많아 다시 인쇄에 들어간 만큼 재입고되기까지 몇 주 소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 5번가의 반스앤드노블 지점도 상황은 같았다. 맨해튼 지점 직원은 “노벨상 소식 이후 바로 재고가 소진됐다”며 “반스앤드노블 다른 매장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록펠러센터 인근 서점인 맥널리잭슨 직원은 “재고가 언제 도착할지조차 알 수 없는데 뉴요커가 이렇게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건 처음 봤다”고 전했다.
현지 도서관에서도 한강 책이 인기다. ‘세계 5대 도서관’ 가운데 하나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뉴욕공립도서관(NYPL)은 이날 도서관에 마련된 13권을 모두 빌려줘 ‘대출 불가’ 상태다.
일본에서도 한강의 일본어 번역본이 동났다. 대형 서점 판매대에 ‘한강의 저작들이 완전 매진됐습니다’라는 안내판이 붙기도 했다. 출판사에는 번역본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출판사마다 수백 건씩 팩스가 쌓일 정도다. 독일의 아마존 사이트에서는 <채식주의자> 독일어판과 영어판이 각각 8위와 44위에 올랐다. 런던=조민선 아르떼 객원기자
뉴욕=박신영 특파원/신연수 기자/실리콘밸리=송영찬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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