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북한 정권의 내력과 본질

입력 2024-10-13 18:04   수정 2024-10-14 00:10

지난해 말 북한 지도자가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조국 통일 3대 원칙인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을 폐기했다. 이 뜻밖의 사태에 남한의 좌파는 침묵했다. 지난달 북한을 대변한다고 알려진 전 정권의 대통령 비서실장이 남북통일을 포기하자고 말했다. 제1야당은 아직도 반응이 없다.

1948년 국제연합 주재로 치러지는 선거를 막으려고 북한은 김구와 김규식이 참여한 남북협상을 마련했다. 그 모임은 “남조선 단독 선거는 설사 실시된다 하여도 절대로 우리 민족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북한 정권과 남한의 종북 세력은 선전선동에서 늘 민족을 앞세웠다. 당연히 이번 사태는 북한 정권의 전략적 파산을 뜻한다. 그리고 한반도의 상황을 ‘분단 체제’로 규정하면서 북한을 두둔해온 세력의 이념적 파산을 뜻한다.

북한이 이런 길을 고른 데엔 절박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전략적 수준에선 남한의 영향으로 북한의 체제가 허물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뜻이 읽힌다. 북한 정권이 우리에 대해 그리도 적대적인 것은 우리가 북한에 무슨 공격적 행위를 해서가 아니다. 자유롭고 잘사는 대한민국의 존재 자체가 북한 정권에 근본적 위협이 된다. 북한 정권으로선 평화적 공존은 멸망의 지름길이다. 전술적 수준에선 북한이 핵무기를 더욱 위협적으로 만들어 큰 이득을 얻는 일에서 남북한을 적대적 관계로 설정하는 수순이 필요했을 것이다.

북한의 태도에서 나온 이 중대한 변화에 대응하려면 우리는 북한 정권의 내력과 본질에 대해 살펴야 한다. 1945년 독일은 이미 패망 단계에 있었고 일본도 오래 버티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곧 조국이 부활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해 2월에 얄타회담이 열리면서 일이 꼬였다. 미국이 소비에트 러시아의 대일전 참전을 위해 한반도를 러시아의 ‘영향 궤도’에 둔다는 약속을 했다는 문서를 이승만이 입수했다. 그가 그 문서의 내용을 국제연합 창립총회가 열린 샌프란시스코에서 폭로하자 미국과 영국은 난처해졌고, 미국 국무부는 서둘러 부인하면서 ‘카이로 선언’이 이행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군은 한반도 남쪽에 진주해 군정을 폈다. 원래 만주 일본군을 공격하려면 러시아군은 일본군의 보급로이자 퇴로인 한반도를 점령해야 했다. 미군이 갑자기 남한을 점령하자 자연스럽게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던 러시아의 계획이 저지됐다.

미국과 러시아의 교섭이 실패하리라고 내다본 이승만은 국제연합 주재의 선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실제로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자 미국은 그의 제안을 따랐다. 그리고 좌익의 악독한 선거 방해를 뚫고 ‘5·10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졌다. 러시아가 국제연합 위원단의 북한 방문을 막아 북한에선 선거가 치러지지 못했다. 북한에선 아직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지지 못했으니, 북한 주민들은 지금도 진정한 해방을 맞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의 식민 통치보다 훨씬 압제적이고 수탈적인 러시아의 군정과 그 군정의 연장인 북한 정권 아래 살아왔다.

당연히 북한에서도 국제연합 주재 아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 그때 비로소 70년 넘게 멈춰선 역사가 제대로 펼쳐질 수 있다. 그런 역사 인식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대북한 정책의 바탕이다. 실은 현실적 통일 정책의 바탕이기도 하다. 만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치러진다면, 북한 주민들은 선뜻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되기로 결정할 것이다. 해방 뒤 줄곧 이어진 북한 주민들의 월남 행렬이 말해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발로 하는 투표’보다 더 분명한 의사 표시는 없다.

이 긴박한 시점에 우리는 북한 정권의 내력과 본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 이념적으로 파산한 종북 지식인들에겐 정직한 성찰을 촉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도 비굴하게 침묵하는 제1야당에 북한의 반민족적 태도에 대한 견해와 대책을 밝히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그들의 행태 밑바닥엔 그들의 이념적 파산으로 맞은 공황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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