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노벨문학상 수상 전부터 한강을 사랑했다"

입력 2024-10-14 14:58   수정 2024-10-14 18:15

<i>“우린 놀라지 않았어요. 전혀 서프라이즈가 아니었어요. 우린 쭉 그녀를 사랑해 왔어요. 노벨문학상 수상 전부터요.”</i>

런던의 대표 서점으로 꼽히는 포일즈에선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놀랍지만 당연한 뉴스였다. 포일즈는 런던에서도 수준 있는 도서 큐레이션으로 확고한 위상을 가진 대형 서점이다. 2015년 이곳에서 한강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주목한 것을 시작으로 런더너들이 한강을 읽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일즈의 언어 부문 부장인 카멜로 풀리시(Carmelo Puglisi)와 12일(현지시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바로 지난해 4월 한강과 함께 오랜 시간 머물며 작업했던 공간에서 한국 언론인과 인터뷰하는 상황을 흥미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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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지만, 놀라지 않았다

그는 “물론 우리도 올해 노벨상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그녀가 그 정도 가치가 있다는걸, 우린 아주 잘 알고 있었어요. 그녀의 작품을 사랑해 왔어요.”라고 했다.

“2015년 <채식주의자>가 나왔을 때 반응이 기억나요.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 크게 소구했어요. 폭력적인 사회에서 고기를 먹지 않기로 다짐한 여성의 이야기, 메조키스트의 사회에서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채식주의자>가 신선한 충격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2016년 세계 권위의 문학상 부커상의 국제 부문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강의 작품은 줄이어 번역 출간되었고, 2015년부터 10년째 서점 매대를 차지해왔다. 구석도 아닌 1층 입구 앞 잘 보이는 자리에 쭉.

2023년 4월 이 서점에선 한강 작가의 영문판 <희랍어 시간(Greek Lessons)> 출시에 맞춰 사인회가 열렸다. 그는 사인회와 북토크 행사로 이틀을 함께 보내며, 그녀의 겸손하고 따뜻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 나누고 있는 이 공간에서 한강 작가와 함께 종일 시간을 보냈죠. 정말 친절했고 평범한 분이에요. 매우 겸손하고 친근했어요. 사실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다 그래요. 근데 그녀는 그녀가 대단한 줄 잘 몰라요. 그게 그녀의 대단한 면이었어요.”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

한강 작품의 각별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전 세계 작가의 작품을 보는 그는 한강의 책은 심지어 ‘사람들을 변화시킨다’고까지 이야기한다.

“한강의 어떤 책을 읽든, 모두 개인적이고 보편적이에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죠. (소설 속 인물들은) 인간 삶의 정말 많은 면을 보여줘요. 한강의 책을 읽으면 심지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책을 읽고 나서 내 삶이 바뀐다면, 그게 한강이 노벨상을 받은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책은 우리를 변화시켜요.”

그는 최신작 <희랍어 시간>을 읽고, 깊이 공감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우리가 책을 읽고 만일 내면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면 그건 엄청난 거예요. <희랍어 시간>을 읽었을 때, 인간으로 우리가 거쳐야 하는 그런 고통을 함께 느꼈고 깊이 공감했어요. (소설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느껴요. 한강의 소설을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이 책을 제일 좋아합니다.”



인류가 보편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깊은 공감. 한강의 소설이 영국 런던 한복판 서점 매대를 차지해도, 세계적인 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해도 놀랍지 않은 이유다.

“이때껏 봐온 모든 노벨상 수상 작가는 이런 유사점이 있었어요. 한강도 단순히 한국인이 아닌 보편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그녀는 모든 나라에 속해있고, 그녀의 책은 모두에게 이야기해요. 여성들, 정치인에게 말하고, 그 외 모든 사람에게 말해요. 그래서 이런 세계적인 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단한 작가예요. 그녀에 대해 매우 자랑스러워해야 해요.”



우리가 한국에 주목하는 이유

그 혼자만의 유별난 취향이 아니다. 영국인들의 관심은 아시아로, 특히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그 뒤에는 영국 주류 사회가 주목하지 않던 시절부터 오랜 기간 노력해온 주영한국문화원(원장 선승혜)의 역할도 작지 않았다. 문화원은 포일즈와 협력해 ‘한국 문화의 달’ 행사를 진행해왔다. 이날도 주동근 웹툰 작가가 직접 런던 포일즈를 찾아 관객들에게 웹툰 작업 스토리와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의 제작 배경 등을 들려줬다.



이런 시간이 쌓여, 런던 서점의 직원이 한국 작가 천명관, 진보라, 박상영 등의 이름과 작품을 줄줄 읊는 정도가 됐다.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들이 한국에 유독 많다고 애정을 표시했다. 마치 ‘포스트 한강’ 리스트를 듣는 느낌이었다.

“한국의 많은 작가가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천명관 작가의 <고래>도 역시 보편적인 목소리를 담고 있죠. 굉장히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동시에 매우 한국적이고 그러면서도 매우 세계적이에요. 이게 바로 한강의 소설이고 그 안에 우리 삶의 많은 목소리가 담겨있어요."

BTS 열풍이 'K-문학'으로도 불길이 이어진 것이라는 시각도 내놨다. “요즘은 한국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아요. 정말 흥미로운 목소리가 많이 담긴 곳입니다. 우린 한국이 어떤 곳인지 간절히 알고 싶어 해요. (호기심은) BTS에서 시작되었다는 얘기도 나와요. K-POP을 듣던 사람들이 한글을 잘 모르면서도 한글판 책을 사요. 한국을 알고 싶기 때문에요. 아주 흥미로운 포인트예요.”

포일즈는 문화원과 협업해 한글판 책을 대거 들여왔고, 이곳에서는 지금은 솔드아웃된 한강의 소설을 비롯해 박상영, 진보라, 천명관, 황석영 등 작가들의 책의 서가가 마련되어 있다. 영국인들이 한국어 책을 읽는다. 누구나 관심을 가지면, 사랑에 빠지면, 원서로 읽고 싶어 한다.



한강의 작품은 이미 세계 무대의 중앙에 섰다. 노벨상은 그 지위를 재확인해줬을 뿐이다. 영미권 대표 대형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로 판권이 넘어가 작업 중인 개정판은 내년 1월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내년엔 신작 <작별하지 않는다>의 영문판 관련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아마도 내년엔 한강 작가를 영국에 모실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당분간 기다리면서 박상영 작가의 신작도 소개하고 한국 문화의 달 행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끝으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에게도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에요. 이틀간 이곳에서 종일 함께 지낸 시간이 있었기에, 그녀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아주 가깝게 느껴요. 개인적으로도 수상을 축하해주고 싶고, 한 예술가로서의 성취도 축하해주고 싶습니다.”



런던=조민선 아르떼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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