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인란트팔츠주에 있는 마인츠시는 ‘폴리머(고분자) 도시’로 불린다. 도시 전체에 고분자 신소재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기관, 대학, 기업이 모여 있다. 유럽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독일의 대표적 연구기관인 막스플랑크의 고분자연구소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연구소 바로 옆에는 신소재 분야에 강한 마인츠 요하네스 구텐베르크대가 있고, 화이자와 코로나19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공동 개발한 기업 바이오엔텍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미샤 본 막스플랑크 연구소 분자분광학 연구단장은 “폴리머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며 “폴리머로 자동차 무게도 줄이고 3차원(3D) 프린터로 내 몸에 딱 맞는 관절 뼈 모형도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막스플랑크 연구자들이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폴리머를 활용한 ‘암과의 전쟁’이다.
한국 언론에 처음 공개된 레이저 실험실에선 고분자를 활용한 암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단백질, DNA와 같은 자연에 존재하는 고분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질병에 대처하는 실험이다. 그중에서도 막스플랑크는 나노미터 크기의 고분자 네트워크를 가진 나노젤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노젤은 다양한 항암제를 더 높은 농도로 저장할 수 있고, 정상 세포를 건들지 않으면서 종양만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어 ‘꿈의 치료제’로 일컬어진다.
바이오 폴리머를 연구하는 탄자 웨일 고분자합성 연구단장은 “미래의 암 치료는 몸에서 일어나는 신호 처리 방식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초점을 맞춰 진행될 것”이라며 “생체와 비슷한 소재를 만들어 살아 있는 물질처럼 신체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에 인류의 미래가 달렸다”고 말했다.
웨일 단장이 특히 집중하는 건 세포에 유전 물질을 주입하기 위한 유전자 치료다. 유전성 질환에서 발견되는 결함 유전자를 교체해 손실된 세포 기능을 회복하는 방식이다. 여러 분자가 서로 결합하면 긴 스파게티면 모양의 펩타이드 섬유가 생기는데 이 섬유는 치료용 바이러스와 세포 외피 사이에 일종의 ‘접착제’가 돼 바이러스가 세포로 흡수되는 과정을 개선해준다.
피부 재생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수분을 함유한 3차원 고분자 네트워크로 구성된 하이드로겔을 이용해 세포의 생리적 환경을 모사함으로써 피부가 자연스럽게 생기도록 하는 치료법이다. 본 연구단장은 “실험실 작업부터 실제 산업에 적용되기까지의 기간이 과거엔 10~12년 걸렸다면 지금은 3~4년으로 단축되고 있다”며 “독일 정부가 블루스카이 연구(아직 실용적이지 않거나 당장의 성과가 없는 기초 연구)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마인츠=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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