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이시바 시대의 한·일 관계

입력 2024-10-14 17:48   수정 2024-10-15 00:15

일본의 원자폭탄 피해자 단체 니혼히단쿄가 지난 11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일본 열도가 들썩였다. 피폭이라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며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달 1일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현실적이었다. ‘방위 오타쿠’로 불리는 이시바 총리는 니혼히단쿄의 수상을 축하하면서도 핵무기 완전 금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뜻을 나타냈다. 일본의 방위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이시바 총리는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미국과의 핵 공유 필요성까지 주장했다.
안보는 매, 역사는 비둘기
이시바 총리의 핵 공유 구상은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일본의 ‘비핵 3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다. 공교롭게도 50년 전 비핵 3원칙을 선언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한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가 일본의 첫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

이시바 총리의 매파적 안보관은 내각 인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본인을 포함해 20명 중 4명을 방위상 출신으로 꾸렸다. 미·일 지위협정 개정, ‘아시아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설립 등의 고집도 꺾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아직 이시바 총리에 대한 호감이 크다. 안보에선 매파지만, 한·일 역사 문제에선 온건한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그는 2019년 8월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 이후 블로그에 “일본이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에서 직시하지 않은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이시바 총리는 오는 17~19일 취임 후 첫 추계 예대제(제사) 기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는 뜻도 굳혔다. 그는 10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한 뒤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한국의 큰 기대가 장애 될 수도
우려되는 것은 오히려 이시바 총리에 대한 한국의 큰 기대다. 기대만큼 성과를 얻지 못했을 때 실망은 더 크다. ‘반일 몰이’ 세력이 가세하면 실망은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우호적인 분위기로 출발했지만 급격히 냉각된 노무현 정권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 이명박 정권과 노다 요시히코 내각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내년 한·일 외교 금자탑인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의욕적이다. 일본은 신중한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2015년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에서 내놓은 ‘사죄를 다음 세대에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시바 정권 초기 입지는 불안하다. 출범 열흘 만에 지지율 50% 선이 무너지며 42%(교도통신 조사)로 내려앉았다. 27일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가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으면 옛 아베파를 중심으로 ‘이시바 끌어내리기’가 조기에 시작될 수도 있다.

이시바 총리에 대한 한국의 기대가 분노로 바뀌면 가장 반길 사람들이 옛 아베파다. ‘역시 우리가 맞았다’며 우경화로 내달릴 것이다. 이시바 총리 당선으로 기초는 닦였다. 이시바 총리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분노해 기초를 허물면 아무것도 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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