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포용, 北 착취…정치·경제제도가 빈부 갈랐다"

입력 2024-10-14 20:35   수정 2024-10-15 14:03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스모글루·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해리스 공공정책대학원 정치학과 교수가 국가 번영 이유를 찾기 위해 주목한 국가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애스모글루와 로빈슨 교수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남북한이 경제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원인을 제도 차이라고 설명한다.

남한과 북한은 분단 당시만 해도 격차가 크지 않았지만 남한은 선진국으로 도약한 반면 북한은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수준의 초라한 경제력을 갖게 됐다. 사유 재산과 공정한 경쟁을 인정하는 ‘포용적 제도’를 구축한 남한과 소수 집단에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착취적 제도’를 지닌 북한의 정치·경제적 제도 차이가 번영의 차이로 극명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창출하고 사회 전반에 정치 권력을 분산해주는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가 자리 잡아야만 번영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권위주의적 제도, 혁신 어렵게 해”
수상자들은 14일 노벨경제학상 수상 직후에도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을 강조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이날 노벨위원회가 연 약식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우리의 연구는 민주주의에 더 호의적”이라며 “권위주의적 성장이 민주주의보다 더 불안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혁신이 어렵다는 게 내 견해”라고 했다.

존슨 교수도 이날 노벨위원회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연구가 “민주주의, 진정한 포괄적인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날 노벨경제학상 선정 이유를 밝히면서 유럽이 세계 각국을 식민지로 삼았을 때 도입한 제도가 국가의 번영 여부를 결정했다는 수상자들의 연구 결과를 높이 평가했다. 노벨위는 “일부 지역에서는 식민지 개척자의 이익을 위해 토착민을 착취하고 자원을 추출한 반면 다른 곳에서는 유럽 이주자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포용적인 정치 및 경제 시스템을 형성했다”며 “수상자들은 이 같은 제도의 차이가 국가 번영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대중서로 활발하게 소통
수상자들은 연구 내용을 대중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2012년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좁은 회랑>을 로빈슨 교수와 함께 썼다. 존슨 교수와는 <권력과 진보>를 내놨다. 최근작인 <권력과 진보>에서 애스모글루와 존슨 교수는 기술 발전의 혜택이 일부 계층에만 돌아간 점을 지적했다. 시장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늘 공동체에 최적의 결과를 보장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최근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관련 단체들이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법치가 약화하고 있다”며 “민주주의가 더 나은 제도, 더 깨끗한 제도라는 인식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과대평가됐을 가능성도 연구하고 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10년 동안 AI가 대체하거나 적어도 크게 보조할 준비가 돼 있는 일자리 비율은 전체의 단 5%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1967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태어났다. 2005년 예비 노벨경제학상으로도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2007년 폰 노이만 상을 받았다. 그는 “‘왜 군사 정권하의 튀르키예는 민주주의와 경제 모두 어려울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경제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수차례 말했다.

로빈슨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존슨 교수는 영국 출신으로 MI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부인이 한국계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수상자 모두 한국과 인연이 있어 ‘지한파’로 평가받는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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