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례로 전날 미래에셋증권의 결제와 리스크 관리 부문은 주말 사이 내부 점검을 마쳐 전날 내부적으로 사장 보고를 마쳤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LP 역할을 하려면 통상 이 두 부문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LP 이외의 업무를 할 때 포지션 한도를 어떻게 가져가고 있는지 등을 확인했다"며 "아무래도 옆동네에서 큰 일이 벌어졌다보니 급히 살펴봤다. 현재로선 '전산시스템상의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파악됐다"고 말했다. 하나증권과 NH투자증권 등 다른 증권사에서도 유관 부서 점검을 서둘러 끝낸 상태다.
이는 신한투자증권이 '블랙먼데이'를 전후로 대규모 ETF LP 운용 손실을 본 영향이다. 앞서 지난 11일 신한투자증권은 ETF LP 업무 목적을 벗어난 장내 선물 매매로 인해 1300억원으로 추정되는 손실이 일어난 사실을 10일 발견했다고 공시를 통해 자진 신고했다. 이 금액은 올 상반기 기준 연결 자기자본 5조5257억원의 2%, 상반기 순이익(2071억원)의 60%가 넘는 규모다.
손실은 지난 8월2일부터 10월10일까지 발생했다. 업계에선 신한투자증권 LP 담당자가 올 8월 초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로 국내 증시가 역대급 폭락하면서 투자한 선물에서 큰 손실이 발생하자 이를 감추기 위해 허위 스왑거래를 등록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으로 추정한다.
LP는 ETF 매수·매도 호가를 촘촘히 제시해 주문이 원활하게 체결되도록 하는 기능을 맡는다. ETF 매수·매도 과정에서 헤지(위험 회피)를 위해 통상 관련 ETF에 담긴 종목·지수 선물을 매도·매수한다.
신한투자증권을 비롯해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신한금융 계열 전반은 암울한 분위기다. 2019년 환매사태가 빚어진 '라임펀드 사기사건' 당시 증권사 중 가장 많은 3248억원을 팔아 논란이 됐던 가운데 사건을 봉합한 지 얼마 안 가 대규모 손실 사고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내부통제 쇄신을 위해 힘써 온 조치들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신한은행은 금융권 처음으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인 책무구조도를 당국에 제출했고, 신한투자증권도 올 3월 증권사 첫 타자로 도입한 바 있다.
가장 선제적으로 내부통제 고삐를 조였던 신한투자증권에서 또 한 차례 사고가 터지자 여의도 증권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둘러 부서 회의를 소집하고 시스템 점검에 나선 증권사들은 "중복확인 과정이 늦어도 다음날까지는 진행돼 문제 직후 확인할 수 있다"며 적극 해명하고 있다. 금감원도 이번을 계기로 증권사들의 시스템 점검 현황과 유사 사례 여부를 따로 보고받겠다고 공지한 상태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LP들의 권한이 커져 발생한 사고로 해석할 수 있는 만큼 '개인의 일탈'로 봐야 하지만 이걸 못 보고 넘어간 회사의 내부통제망이 더 큰 문제"라면서 "이 기회로 신한투자증권을 비롯한 증권사들이 내부통제 관련 전산시스템과 임직원 보상 구조를 제대로 보강하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책무구조도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학계 한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를 증권사 중 제일 먼저 만들었는데 '보여주기식'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내부통제에 전형적으로 실패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업계 우려는 신한투자증권의 LP 역할 공백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또 금감원 지시로 내부 점검에 들어가면서 ETF 시딩을 멈추고 몸을 사릴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렇게 되면 ETF 첫 설정 때부터 시딩을 받아서 들어가는 운용사들로선 예정된 ETF 출시 일정들을 뒤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오는 11월4일 공동 출시가 예정된 밸류업 ETF도 예외는 아니다.
운용사 한 관계자는 "ETF 출시에는 LP 역할을 하는 증권사가 필수"라며 "그런데 김병환 금융위원장까지 조사를 주문하고 나선 상황에서 증권사들이 굳이 적극적으로 시딩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우려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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