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징어 못 먹을 판"…역대 최악의 상황에 '발칵' [이슈+]

입력 2024-10-15 14:56   수정 2024-10-15 17:12

“말릴 오징어가 없습니다. 덕장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했는데 앞으론 오징어를 못 구할 형편이예요. 그냥 문을 닫을 수밖에요.”

경북 동해안 바닷가를 끼고 40년 넘게 오징어를 말리고 파는 덕장을 운영해 온 A씨는 최근 폐업했다. 창고를 비우고 덕장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들도 모두 돌려보냈다. 동해안에 오징어 씨가 마르면서다. 그는 "역대 최악의 오징어 흉년"이라고 표현했다. A씨에 따르면 인근에 국산 오징어만 취급하던 덕장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나마 지금 남은 업장들은 국산 오징어는 포기하고 원양어선에서 잡아온 오징어만 말리는 형편이다.

A씨는 “최근 들어 국산 반건조 오징어 쉽게 구경이나 해본 적 있냐”더니 “오징어가 안잡히는 데다 그나마 미리 창고에 쌓아뒀던 건오징어도 작년과 올해 대흉년을 거치면서 대부분 바닥 났다.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인이 즐겨 찾는 대표 수산물인 오징어가 사라지고 있다. 최근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한 탓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동해 수온 상승으로 오징어 서식지가 북쪽으로 이동했고, 중국 어선들이 북한 해역에서 국산 오징어를 쓸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오징어 가격이 폭등하면서 전체 수산물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손바닥만한 오징어 한마리가 3만원
15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최근 물오징어 도매 가격에 해당하는 물오징어 중도매인 판매 가격(생선·중·지난 3월 기준)은 1만7124원으로, 평년 1만2408원 대비 38%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10년 전인 2014년 4922원보다 세 배 넘게 올랐다.

소매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물오징어 연근해(신선 냉장·중) 1마리는 지난달 말(9월30일 기준) 6241원을 기록했다. 평년 가격(5450원)보다 14.41% 뛰었다. 건오징어 가격도 함께 올라 2012년 10마리 2만3801원에서 지난해 7만7469원으로 225% 넘게 치솟았다.

속초관광수산시장에선 손바닥 만한 작은 오징어 횟감이 마리당 3만원을 넘어선 지 오래다. 건어물상을 운영하는 상인 정모 씨는 “오징어 값이 오른다 해도 이렇게 비싼 적은 처음”이라며 “상인들도 오징어 값을 보고 놀란다. 단위당 가격으로 치면 한우 1++ 등심보다 비싼 수준”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건어물상이나 수산물 가게 등 소매상들 사이에선 국산 오징어 구하기가 ‘전쟁’ 수준이다. 덕장 창고에도 물건이 없어 대금을 미리 치르고 매수 예약을 걸 정도다.

시장에선 오징어를 헤아리는 단위인 ‘한 축’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축은 오징어를 20마리씩 묶어서 세는 기본 단위인 데, 요즘엔 한 축씩 팔려고 해도 오징어가 모자라다. 그나마 10마리씩 묶어서 파는 형태가 대부분으로 이마저도 사가는 손님은 잘 없다. 시장에서 동해안 앞바다산 상품(上品) 건오징어를 사려면 10마리당 15만원은 넘게 줘야하기 때문이다.

좌판에서 수산물을 판매하는 김모 상인은 “과거에 오징어는 안주감으로 애용하던 마른 오징어나 생물 회 모두 싼 맛에 먹던 음식 중 하나였는데 지금은 손님들은 ‘오징어가 이렇게 비싸냐’며 물건을 들었다가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밤바다 오징어잡이 배 풍경도 '옛말'
이처럼 오징어값이 뛴 건 어획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이 발간한 2024 수산분야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보고서를 보면면 지난해 오징어 생산량은 2만3343t으로 전년(3만6578t)대비 36.2% 줄었다. 최근 5년 평균(5만508t) 대비해선 반 토막이 났다.


동해안에선 오징어 조업을 포기하는 어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오징어철이 되면 동해 바다 수평선 언저리 깜깜한 망망대해에서 대낮같이 훤하게 불을 밝히고 오징어를 낚아 올리던 오징어잡이 배(일명 채낚기 어선)의 풍경도 옛말이 됐다. 오징어잡이 배 어민들이 “배를 끌고 출항할수록 적자만 불어난다”고 조업을 아예 포기했기 때문이다. 오징어를 잡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가도 오징어를 10~20마리 정도 잡는 수준이니, 인건비와 기름값 등을 감안하면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훨씬 많다.

오징어 어획량 감소는 온난화에 따른 어장 변화와 중국 어선의 남획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1968∼2023년 56년간 전 지구 표층 수온이 0.7도 오르는 사이 한국 해역의 표층 수온은 1.44도 상승했다. 특히 연근해 중에서도 동해의 수온 상승 폭은 서해의 1.5배나 됐다

동해는 북부 해역은 찬물이고 남부 해역은 따뜻한 물인데, 오징어 어장은 이 경계에서 주로 형성된다. 그런데 온난화 효과로 찬물과 따뜻한 물의 경계선이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오징어 어군도 갈수록 북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마당에 2004년부터 북한수역 조업권을 따낸 수백 척의 중국 어선이 동해상에서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것도 문제다.


오징어 가격이 뛰자 전체 수산물 물가도 오르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수산물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4.2% 상승했다. 오징어 외에도 생물 고등어는 1년 사이에 71.8%, 생물 갈치는 43.1% 올라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키웠다.
"이러다 명태 꼴 날라"
국내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 명태처럼 국산 오징어도 조만간 밥상에서 사라질 판이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명태는 보관 방법이나 성장 정도에 따라 △생태 △동태 △코다리 △북어 △황태 △노가리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던 국민 먹거리였지만 국내 바다에서는 사실상 씨가 말랐다. 2019년부터 국내 포획이 금지되면서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명태 대다수는 러시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국내 어획량이 급감한 오징어도 주로 중국에서 사오는 형편이다. 페루와 칠레 등 남미산 비중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오징어 수입량은 15만5800t으로 전년(13만8400t)보다 12.6% 늘었다. 페루산과 칠레산이 각각 5만8800t, 1만8800t으로 전년보다 37.9%, 26.2% 늘었다. 남미 동태평양 해역에서는 최대 길이 2m에 이르는 대왕오징어가 주로 잡히는데 국내에서는 버터구이, 진미채 등으로 가공하거나 덮밥, 짬뽕 등의 재료로 쓴다.

해수부는 뒤늦게 케냐 등 해외 오징어 대체 어장을 추가 확보하겠다고 나섰지만 생산량이 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오징어 자체 자원 양이 준 데다가 대만부터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까지 동해에서 오징어 조업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라며 “채낚기 어선을 줄일 수 있도록 감척 사업을 지원하고 총허용어획량을 조정하는 등 전방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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