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17일 10:4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큰 형님도 살겠다고 고군분투하는데…앞으로 뭐먹고 살아야할 지 고민이 더 커졌네요"(한 국내 대형 PEF 운용사 대표)
올 한해 자본시장의 가장 큰 이슈였던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경영권 공격을 지켜보는 사모펀드(PEF)들의 관전평은 엇갈린다. "진정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도입"이라며 MBK를 응원하는 운용사와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튀면 어쩌나" 우려하는 운용사로 양분된다.
재계 최고경영진 사이에서도 'MBK 쇼크'가 주요 저녁자리 화두로 회자되고 있다. 한 그룹에선 임직원이 MBK파트너스 관계자를 만나면 문책하겠다는 '경고'도 떨어졌다고 한다. "앞으로 MBK파트너스와는 거래하지 말자"는 소극적인 저항에서부터 각 기업끼리 자사주라도 더 교환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초기 논의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MBK는 왜 거버넌스를 들고 나왔나
MBK파트너스의 '변신' 배경을 두곤 업계에서도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돈은 벌만큼 벌었다는 창업자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오랜기간 재계에 품어온 숙원을 하나씩 꺼낼 것이란 설명도 있지만 곁가지에 가깝다. 본질적인 원인은 한국에서 바이아웃 PEF가 갈수록 먹고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데 있다.올 들어 성사된 M&A에서 PEF가 성과를 본 사례는 손에 꼽는다. 한앤컴퍼니는 오랜기간 매물로 남았던 한온시스템을 일부 정리했지만 막바지 가격을 깎아달라는 인수측 요청까지 받아들어야 했다. 금리 인상과 증시 침체 핑계를 대기에도 저금리가 끝난지는 4년차에 접어들었고 글로벌 증시는 역대급 호황이다. 서로 펀드 규모 경쟁을 벌이던 KKR 칼라일 블랙스톤 등 글로벌 PEF들이 급변하는 거시경제 환경에 오히려 펀드 규모를 조용히 줄였지만 국내 PEF들은 오히려 너도나도 1조원대 펀드로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 늦어도 3년 내엔 모아둔 자금을 대부분을 소진해야 다음 펀드를 만들 수 있다보니 출혈 경쟁은 불보듯 뻔하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이렇게 규모를 키운 국내 대부분 PEF 운용사들이 성과를 낸 방식은 냉정히 말해 경쟁입찰에서 비싸게 산 매물을 저금리 유동성에 힘입어 더 비싸게 파는 '모멘텀 플레이'에 그쳤다는게 업계의 자체적인 평가다. 혹은 기업들의 2대 주주로 참여해 큰 리스크부담 없이 상장 과정에서 과실을 보는 전략에 그쳤다. 두 번째 전략은 SK그룹이 11번가 콜옵션을 이행하지 않겠다 나선 이후 사실상 막을 내렸다.
저금리 시기 유동성 플레이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규모를 키운 MBK파트너스는 금리인상 직전인 2021년 무렵부터 주요 매물들을 파이어세일로 대거 정리했다. 이후 여러 인수전에 뛰어들긴 했지만 IT와 실버산업 외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다만 IT기술 역량을 보는 MBK파트너스의 선구안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더 크다). 대신 이들이 눈여겨본 곳은 저평가된 국내 '상장사'였다. 2022년 돌연 '해외 자본'이란 악역을 감수하며 일본 도시바 인수전에 뛰어들어 일본 언론을 장식하더니 오스템임플란트 인수전에선 행동주의 펀드인 KCGI를 향한 대립과 회유를 반복하면서 공개매수 전략을 처음 선보였다. 지난해 말 한국앤컴퍼니에 대한 깜짝 공격에 이어 고려아연에서 첫 과실을 앞두고 있다.
한 글로벌 PEF 관계자는 "LP 사이에선 MBK파트너스가 한중일 동북아펀드를 표방하는 데 중국 투자는 막혔고 한국에선 성과가 좋지 않다보니 왜 이렇게 큰 펀드를 만드냐는 의문이 계속 있었다"라며 "그에 대한 답변으로 한국앤컴퍼니를 통해 '쇼잉'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고, 고려아연을 통해 본격적인 전략변화를 내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재벌에 붙자"...反MBK 전략
MBK파트너스의 변신에 대한 성패는 수 년 뒤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MBK파트너스가 끝없이 구애해야 할 유일한 상대는 정부도 기업도 소액주주들도 아닌 펀드에 출자하는 출자자(LP)다. 어찌됐건 여러 논란 끝에 MBK파트너스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펀드일 뿐 아니라 가장 특색있는 여러 전략을 구사하는 PEF로 자리잡는데까지는 성공했다.MBK가 주도한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하는 PEF들의 방식은 두 가지다. 아예 반대로 재계와 더 가까워지며 스킨십을 늘려가는 전략이다. 국내 대형 PEF 운용사인 한앤컴퍼니가 대표적이다. SK그룹 구조조정의 마지막 퍼즐이던 SK스페셜티에 4조 가량을 쏟으면서 시장을 놀라게 했다. 2위 비더인 MBK파트너스보다 몇천억원을 더 써냈다. 유사한 매물인 에어프로덕츠코리아가 업황 불황에 매각을 접었지만,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18배 내외의 베팅을 서슴치 않았다. SK그룹의 고비를 넘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만큼 앞으로 '떨어질 거래'도 많을 것이란 게 업계의 평가다.
재계와 네트워크도, 자본력도 부족한 PEF들은 선택지를 고심 중이다. 한 PEF는 "이대로라면 IB와 증권사를 찾을 게 아니라 혹시 오너 일가가 이혼하는 곳은 없나 가정법원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도 나온다"라며 "MBK의 고려아연 공격이 성공하고 높은 수익률을 증명해내면 LP들도 제2, 제3의 경영권분쟁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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