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도인 한국계 미국인 김 회장이 자본시장의 큰판에 뛰어들도록 만든 건 ‘차입 매수(LBO)’라는 새로운 시장이었다. 그가 전 세계 연기금을 돌아다니며 펀드를 조성한 2000년대 초반은 KKR, 칼라일, 블랙스톤 등 글로벌 사모펀드(PEF)들이 사자후를 발하던 시절이었다.
KKR 등은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 자본시장의 주요 플레이어 지위를 차지했다. 김 회장의 눈에 이 같은 변화는 마치 신이 내린 계시 같은 것이었을 터다. 조금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정해진 돈벼락’이었다. 이는 마치 미국의 아주 맛있고 수익성 좋은 햄버거 프랜차이즈를 극소수의 한국인만 알고 있고, 그 중 한 명이 한국에 수입하기로 한 결정과 비슷하다.
김 회장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자본시장의 변화 현장을 직접 목도하고, 몸으로 체득했다. 그의 수첩은 전 세계 연기금 담당자의 목록으로 빼곡했을 것이다.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의 시장경제 우등생들도 어느덧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의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MBK 도전의 결과는 익히 아는 바다. 작년 말 기준 펀드 운용 규모가 300억달러(약 40조원)에 달하는 거대 사모펀드로 성장했다.
MBK가 정말로 ‘늑대의 길’, 다시 말해 칼 아이컨(아이컨엔터프라이즈), 폴 싱어(엘리엇매니지먼트), 빌 애크먼(퍼싱스퀘어캐피털매니지먼트) 등의 행동주의 전략으로 선회한 건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 MBK 측은 영풍과 연합해 공개매수전을 펴면서 “잘못된 경영을 바로잡으려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MBK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엔데믹과 함께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차입매수 대가들의 위세는 예전만 못하다. 대기업 비위 맞춰가며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바라보는 기존 방식으로는 성이 안 찰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한국 상장사 주식은 너무 싸다. MBK 같은 배고픈 포식자에겐 내로남불을 외칠 요인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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