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이 진행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중국은 사회적·정치적 격변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중국 공산당 주석인 마오쩌둥이 주도한 이 혁명은 자본주의와 전통적 요소를 제거하고 '진정한' 공산주의 이념을 수호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혁명은 중국 경제에 깊은 영향을 미쳐, 심각한 혼란과 쇠퇴를 불러왔습니다.
농업 생산량도 줄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정치적 투쟁을 중심으로 한 혼란 상태였습니다. 지식인과 부르주아 계층을 농촌으로 보내 교육한 정책은 농업 활동에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경제 활동의 마비로 이어졌고, 특히 농업 생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농촌 지역에서 생산 대신 정치적 투쟁과 이념 교육이 우선시됐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적인 식량 부족 현상이 발생했고, 이는 대규모 기근으로 이어졌습니다.
문화대혁명 전, 중국 경제는 이미 1950년대 후반의 대약진 운동 실패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대약진 운동은 농업과 산업을 동시에 급격히 발전시키려는 시도였으나, 결과적으로 대규모 기근과 경제적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혁명은 중국 농업과 경제 전반에 더욱 심각한 피해를 가져왔습니다.
농업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 분야에서도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면서 생산성이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산업 분야가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중국은 중공업에 상당한 투자를 했지만, 혁명 기간 정치적 투쟁으로 인해 공장들이 자주 문을 닫았고, 많은 숙련 노동자와 관리자들이 숙청되거나 '재교육'을 위해 농촌으로 보내졌습니다. 이는 전문성 상실과 효율성 저하를 일으켜 상품 생산의 급격한 감소를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중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오쩌둥의 이념을 따르기 위해 많은 기술자와 과학자들이 정치적 박해를 당하거나 노동 개조 캠프에 보내졌습니다. 또 많은 생산 설비가 파괴돼 기술 혁신과 산업 생산은 사실상 멈췄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산업 생산성은 급격히 훼손됐고, 중국은 자급자족 경제로 회귀하게 됐습니다. 글로벌 시장과의 교류도 차단됐고, 이는 중국이 국제 경제 질서에서 점차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아울러 문화대혁명은 자원의 낭비를 초래했습니다. 정부는 선전 활동과 기타 정치적 행사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면서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자원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문화재와 역사적 유적 파괴는 잠재적인 관광 수익 손실을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문화대혁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습니다. 이후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을 주도했고, 중국은 시장 경제로 전환하게 됐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경제적 혼란을 경험한 중국은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하게 됐으며, 이는 오늘날 중국 경제 성장의 토대가 됐습니다.
따라서 문화혁명은 단순한 경제적 후퇴가 아니라, 이후 중국 경제 발전의 전환점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정치적 이념보다는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으며, 이는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현대 중국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대 교수, 메타버스금융랩 소장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