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인천 서구 청라동에 있는 실버복지주택 '더시그넘하우스 청라'를 방문했다.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서울에서 경인고속도로를 통해 인천 방향으로 들어오다 계양구를 지나 봉오대로로 나오자 관문 격인 청라1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라국제도시의 대표 도심하천인 심곡천 물줄기를 쭉 따라 올라가니 고즈넉하고 조용한 평지에 붉은색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평일 오전 기준 서울 여의도에서 5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진 것은 '후끈함'이었다. 아직 겨울까지 많은 기간이 남았지만 건물 전체가 온기로 따뜻했다. 건물 복도부터 각 가구 내 화장실까지 전부 바닥을 온돌식 난방 시스템으로 깔아놨기 때문이었다. 이는 자곡동 더시그넘하우스엔 없는 시설이다. 두 실버복지주택을 지은 박세훈 엘티에스 회장을 이날 현장에서 만났다. 박 회장은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아프실 때가 환절기"라며 "건강을 위해 어르신들이 머무는 모든 곳에 항상 따뜻하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드려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자곡동 더시그넘하우스엔 '너싱홈'이 있다. 너싱홈은 치매, 중풍 등 만성질환을 가진 중증 고령자에게 간호·간병·재활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요양시설이다. 더시그넘하우스가 고령자들에 주목을 받게 된 주된 특징이기도 하다. 자곡동 단지에 비해 규모가 작다 보니 이곳엔 너싱홈이 없었다. 대신 '헬스 매니지먼트'에 각별한 신경을 쓴 모습이었다. 2명의 간호사가 상주해 건강상담이나 혈압, 혈당, 투약 관리를 해주고 인근 대형병원과 연계한 응급 대기 후송체계를 구축해놨다. 고령자에게 맞춰 전문 영양사들이 상주하며 저염, 저지방, 칼로리 조절에 신경 써 제공되는 식단도 특징이다.
다른 실버주택에 비해 객실 밖 풍경이 유난히 잘 보였다. 여기에 또 다른 비밀이 하나 숨어 있었다. 일반적인 노인복지주택은 베란다 안전 난간이 알루미늄으로 돼 있다. 이곳은 안전 난간을 특수 강화유리로 설치해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입주한 고령자들이 문을 열지 않고도 바깥 풍광을 거슬림 없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커뮤니티 시설은 서울 자곡동 더시그넘하우스와 흡사했다. 따뜻한 아이보리 조명에 시각적 편안함을 주는 목재 인테리어를 전체적인 건물 톤으로 삼았다. 건물 내부 벽이나 천장, 조명부터 손잡이까지 모든 인테리어를 둥글게 디자인한 점도 독특했다. 어르신들이 시각적으로 각지고 모서리가 튀어나온 것보다 둥근 디자인들이 심리학적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점을 반영한 설계다.
여러 시설 가운데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영화관이었다. 더시그넘하우스 내 영화관은 고작 10명 정도가 앉아서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소규모 시설이었다면 이곳은 입주자 정원과 비슷한 138명이 앉아 볼 수 있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처럼 꾸며놨다. 걸음이 불편한 입주자를 위해 곳곳에 쉼터를 마련하고, 옥상에 텃밭도 크게 조성해놨다. 입주자들이 야채를 재배해 식단에 반영하기도 한다고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에게도 이곳은 천혜의 주거 입지라는 게 이곳 직원의 설명이다. 세계 골프계의 전설인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세계 298개 골프장 중 27개 최고의 코스만 모아 구성해 만든 '베어즈 베스트 청라' 골프장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노인복지주택에서 살길 원하는 고령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 및 가족과 자주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고령자는 대중교통이나 도로망이 잘 갖춰진 도심 속 노인복지주택을 선택한다. 이곳은 자동차를 통한 이동은 물론 단지 인근에 서울 지하철 7호선 연장선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향후 단지와 가까운 봉수대로역과 중봉교역이 개통되면 가족이나 여러 사람의 방문이 수월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집을 선택하는 데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살아보는 것이다. 자곡동 더시그넘하우스는 대기자가 120명에 달해 입주를 원하는 고령자들이 미리 살아보고 입주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곳은 지난해 12월 지어져 아직 입주자가 다 들어오지 않았다.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관계자는 "아직 입주자 여력이 있어 원한다면 최소 1달부터 최대 4~6개월 정도는 미리 들어와 직접 살아보고 입주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자 인천시가 해당 부지를 근린생활시설로 전환해줬다. 전체 건평의 45%를 카페나 식당, 술집 등으로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평소 독실한 원불교 신자였던 박 회장은 상업시설 대신 원불교 교당을 이곳에 함께 짓겠다는 계획을 갖고 이곳을 두 번째 더시그넘하우스로 지었다. 그는 "일본처럼 실버복지주택이 브랜드화되고 기업화가 된다면 중산층과 그 이하 고령층들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더시그넘하우스 청라가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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