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16일 10:2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4년은 글로벌 전기차(EV) 업체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2020년대 초반, 전 세계적인 넷제로(Net Zero) 열풍을 타고 새로운 주류로 부상한 전기차 산업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대규모 자본 유입으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 사이에서 대두된 전기차에 대한 의구심은 시장 수요의 둔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시장에 난립했던 수많은 전기차 스타트업의 연이은 도산과 주요 자동차 OEM들의 전기차 전환 계획 지연 및 철회로 이어지고 있다.
누적 판매대수 10만대 이상을 기록한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체는 작년 10월 파산을 신청했고, 미국의 한 전기트럭 제조 스타트업과 전기차 스타트업 또한 파산 절차를 밟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연기관(ICE) 제조를 폐지하고 100% 전기차 전환을 선언했던 유럽 기반의 OEM도 기존 계획을 철회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전기차 시장의 변화가 신기술이 초기 시장에서 주류 시장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수요 침체인 ‘캐즘(Chasm)’인지, 아니면 전기차 시장의 과잉 기대에 의한 ‘근본적인 시장 수요 정체’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안전성, 정부 차원의 보조금, 내연기관(ICE)과 전기차 사이의 가격 동등성(Cost Parity) 달성 여부 등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이 중에서도 소비자의 경제성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두 가지로, 중단기적으로는 정부의 보조금 추이가, 중장기적으로는 가격 동등성 달성 여부가 전기차 수요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된다.
먼저, 환경적인 요인을 간과할 수 없다. 올해 한국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으며,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 현상은 각국 정부와 소비자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기조를 고려해 중단기적으로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탈탄소화 정책과 각종 전기차 보조금의 추이는 변동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 가격 동등성을 살펴보자면, 전기차 산업의 평균 제조비용은 하향 평준화된 가격 동등성을 기반으로 내연기관 차량의 제조 비용 대비 높은 원가 우위와 경제성을 갖춘 강력한 파워트레인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에 따르면 배터리 전기차(BEV)의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 배터리 셀 및 팩의 생산단가는 지난 2022년 각각 킬로와트시 당 128달러와 33달러에서 2023년 107달러, 32달러로 떨어졌다. 이러한 가격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전기차의 원가가 동일 세그먼트 내 유사 성능의 내연기관 차량과 동일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특히 중국과 같은 전기차 제조 경쟁력이 뛰어나고 경쟁이 치열한 국가에서는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가격 동등성이 이미 실현되었다.
전기차용 셀 및 배터리 원가 추이
또한,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 의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EY가 최근 발표한 EY 모빌리티 소비자 지수(EY Mobility Consumer Index)에 따르면, 2024년 전기차(완전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하이브리드) 구매의향 비중(58%)은 실제 구매 비중(44.8%)보다 높아 향후 전기차 수요 증가의 잠재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산업계는 장기적인 전기차 수요 정체 가능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인천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건 이후 전기차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기차 수요 정체에 대한 우려를 더욱 가중시켰다. 전기차 화재 사건이 조명되자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제한하는 등 전기차 포비아 현상이 확산되었다.
물론 한국에서 발생한 특정 사건이 글로벌 시장에 동일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전체 자동차 수요의 약 60%를 차지하는 중국, 미국, 유럽 시장 내 전기차 수요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2023년 전기차 신규 등록은 전년 대비 각 시장 별로 35%(810만 대), 40%(140만 대), 그리고 20%(320만 대) 증가했다. 이러한 수요 증가는 각 국가별로 다른 정책, 가격 책정 요소, 소비자 심리 등에 의해 결정된다. 중국에서는 전기차 세액공제 및 지원금이 소비자 수요에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친환경차 세액공제 제도(Clean Vehicle Tax Credit) 및 주요 전기차 모델의 가격 인하가 전기차 수요를 촉진하는 데 큰 요소로 작용했다.
내연기관 시대에 이미 주요한 자동차 생산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진 한국은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점에 서 있다. 미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이 중요한 전환점에서 국내 모빌리티 산업은 글로벌 전체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현재의 수요 둔화 현상을 슬기롭게 극복해 장기적인 전기차 전환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선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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