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시스타(KISTA) 산업단지엔 화웨이 간판이 버젓이 걸린 건물이 있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기 이전에만 해도 세계 1위 통신장비업체인 에릭슨의 엔지니어들이 두 배 연봉을 받고 이곳으로 몰렸다. 화웨이가 시스타에 둥지를 튼 건 스웨덴 산학연의 중심인 시스타가 전력반도체 분야의 본산이어서다. 시스타엔 에릭슨을 주축으로 스웨덴 제1의 공대 KTH, 국영 연구소 RISE, 국방과학연구소 등이 밀집해 있다. 화웨이가 노리는 건 인재들의 네트워크다.
화웨이가 특히 주목하는 기관은 RISE다. 유럽에서 독일 프라운호퍼, 프랑스 CEA, 네덜란드 TNO에 이어 네 번째로 규모가 큰 RISE는 분야별로 산재해 있던 민간 및 정부 출연 연구소 30여 개를 2018년 하나로 통합해 출범했다. 3500여 명의 연구 인력을 보유한 RISE는 스웨덴이 글로벌 전력반도체 산업의 메카로 부상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임장권 RISE 연구위원은 “전기차 제조사들이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해 가장 공들이는 영역이 전동화 시스템”이라며 “고열을 견디며 전력 변환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첨단 전력반도체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의 국민차로 불리는 볼보가 RISE와 함께 차세대 전기차 전력모듈을 공동 개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화웨이가 독일 뉘른베르크 프라운호퍼 인근에 전력반도체 센터를 세우고, 중국 국유 철도기업 CCC가 철도용 전력모듈 분야 강자로 불리는 영국 다이넥스를 인수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와이드밴드갭(WBG) 파워 반도체는 스웨덴이 공들이고 있는 미래 기술 중 하나다. 실리콘 기반 반도체보다 더 넓은 밴드갭(전자와 전자 공극 사이의 에너지 차이)을 가진 반도체 소재를 사용해 제조한 전력반도체를 의미한다. 실리콘카바이드(SiC)와 GaN가 대표적인 WBG 반도체 소재다. 스웨덴에선 이미 3300볼트(V)를 견딜 수 있는 전력반도체를 전차에 상용화했다. 국내에선 현대차가 650V 수준인 전기차 전력반도체의 성능을 800V로 끌어올리는 연구를 하고 있다. 고전압 전기를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한 스마트 그리드를 완성하려면 1만V급 이상의 전력반도체가 필요하다.
스톡홀름=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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