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물리학 포기하고 노벨 물리학상 받은 제프리 힌턴

입력 2024-10-16 17:39   수정 2024-10-17 00:22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딥러닝의 대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명예교수(77)는 58세 때인 2005년 이후 서거나 누워서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어머니 대신 벽돌이 가득 찬 난로를 옮기다가 생긴 허리 디스크 질환이 심해져 하루 한두 번 불가피한 생리적 현상을 해결할 때를 빼곤 아예 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실에는 서서 일할 수 있는 책상과 함께 간이침대에서 누워서 제자들과 대화하고, 식사는 식탁 아래 매트를 깔아 무릎을 꿇고 한다. 이동 시에는 택시나 버스 뒷좌석에 눕거나 열차 침대칸을 이용한다.

힌턴은 ‘AI 메이커스’의 저자 케이드 메츠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했다. 병에 마음대로 하라고 해버리면 더 힘들어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다. 그의 삶은 상당수 노벨상 수상자가 그러하듯 열정과 집념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인류의 삶에 획기적 기여를 한 위대한 여정이었다.

힌턴 가문은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학자 집안이다. 현대 대수학의 원조, 국민총소득(GNP) 개념 창시자, 정글짐 발명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여성 물리학자 등이 그의 직계와 방계 친인척이다. 부친은 곤충학자로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었다. 그러나 가문은 영광이자 큰 압박이기도 했다. 힌턴은 “네가 정말 열심히 해야 나보다 2배쯤 나이를 먹었을 때 내 반만큼이라도 될 수 있을 거다”며 ‘4배 우월론’을 펴는 아버지를 피해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목수 일을 했다. 대학에서도 물리학으로 시작했다가 수학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느끼곤 철학으로 바꿨다가 그것도 포기하고 실험심리학으로 졸업했다.

젊은 시절 학문적 방황 속에서도 힌턴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뇌’였다. 고교 친구에게 뇌의 신경망 작동 원리를 들은 이후 60년간 평생 과업이 됐다. 인공지능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는 뇌를 모방한 기계, 곧 생각하는 기계로 구체화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 화두는 그를 수십 년간 학계의 비주류로 낙인찍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마빈 민스키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기호주의에 맞선 힌턴식의 신경망 연결주의는 이단으로 무시당했다.

학문적 천대를 이겨내고 그를 딥러닝의 대부로 우뚝 서게 한 것은 투철한 자기 확신과 열정이었다. 그가 첫 네이처지 게재 논문을 소포로 보낸 것은 결혼식 날 아침이었다. 자신이 낸 아이디어의 가치 평가 기준은 끼니 생각을 잊어버려서 얼마나 몸무게가 줄었냐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연구실로 돌아가서 좀 더 연구할 수 있도록 가족에게 허락받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저마다 힌턴과 비슷한 신념과 헌신이 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 겪는 주변의 저항과 비난, 조롱을 견뎌내면서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mRNA(메신저리보핵산) 코로나 백신 개발에 결정적 기여를 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는 대학에서 조교수에서 연구원으로 강등당하고 연구실도 골방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 와중에도 단 하루도 연구 작업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의 발견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배리 마셜은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10억 개의 균이 든 용액을 마시고는 열흘가량 설사와 구토, 주변인을 다 내쫓는 구취에 시달린 뒤 가설 하나를 입증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 힌턴이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첫 교수직을 얻을 때 그는 동료 교수들보다 30%나 낮은 연봉을 받았지만, ‘비주류’ 연구를 실컷 할 수 있는 연구실이 생겼다는 데 마냥 즐거워했다. 유도 진화 기술 개발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프랜시스 아널드는 “돈 속에서 헤엄치고 싶지는 않다”며 특허출원도 하지 않았다. 박봉의 문예지 근무를 했던 한강은 시사잡지 기자직 등에 지원했다가 미끄러졌는데, 만일 합격했다면 작가로서의 그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노벨상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다만 개인의 치열한 삶과 사회적 수용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는 있다. 말도 안 될 것 같은 연구에 평생을 매달리고, 이를 받아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사회에서 노벨상이 나온다. 엘리트들이 오로지 의대로만 몰리는 우리는 현세적이어도 너무 현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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