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경제와 증시는 강하다. 경기는 ‘노 랜딩’이란 신조어가 나올 만큼 2%대의 성장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7월 실업률이 4.3%로 높게 나오자 침체 우려가 제기됐던 3분기에도 3% 내외로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미 증시는 시가총액이 전 세계의 60%에 근접할 만큼 빅테크 주도로 1990년대 후반의 ‘골디락스’ 장세가 재현되고 있다.
4년 전 조 바이든 정부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미국 경제와 증시는 녹록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격차가 줄어들고 대내적으로는 트럼프 키즈에 의해 미국 의회가 점령당할 정도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시련을 맞았다. 집권 기간에도 지방은행 위기, 국가신용등급 강등, 자연재해 등이 연속됐다.
중남미 외채위기, 아시아 외환위기, 러시아 모라토리엄 사태가 연속됐던 1990년대 후반에 비유되는 비상 상황을 푸는 일은 쉽지 않다. 특정 경제이론에 의존해 풀다가 더 어려운 국면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대공황과 같은 비전통적인 상황을 극복하는 데 적용됐던 실증적인 정책 처방이 동원된다. 바이든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인 재닛 옐런 장관이 들고 나온 것이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다.
1999년 4월 예일대 동문회에서 옐런이 언급해 알려지기 시작한 이 패러다임은 1960년대 존 F 케네디 정부 때 실행됐던 경제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제임스 토빈 당시 예일대 교수로부터 출발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월리엄 노드하우스, 로버트 실러 교수 등이 뒤를 이으면서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때는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실증적인 경제정책 운용의 틀인 만큼 이 패러다임은 옐런 장관이 주도하면서 변화를 줬다. Fed에서 잔뼈가 굵었던 점을 고려하면 통화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겠느냐는 선입견과 달리 재정정책을 더 중시했다. 학문적으로 이 패러다임이 통화론자보다 케인즈언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재정정책도 종전보다 대담해졌다. 비상 상황이 연속되면서 국가채무 우려와 관계없이 재정지출에 오히려 적극적이었다. 평상시에도 성장률(g)이 이자율(r)보다 높으면 감세 등을 추진해 민간의 경제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했다. 빅컷의 단행으로 미국 경제는 더 강해질 것(g>r)으로 보는 것도 이 근거에서다.
주변국의 외환 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도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이시바 시게루 신임 일본 총리는 엔고를 선호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엔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엔·달러 환율이 취임 이후 10일 만에 141엔대에서 149엔대로 급등했다. 원화와 엔화 간 상관계수는 ‘+0.3’으로 여전히 높다.
이 밖에 지정학적 위험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점도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2년 반이 넘었지만 종전(終戰) 기미보다 새로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도 이란이 참가하면서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구도도 재편될 움직임이 뚜렷하다.
역수수께끼 현상이 나타나는 데는 내부요인도 크다. 우리 경제와 증시는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공공연하게 들릴 정도로 녹록지 않다. 지난 2분기 성장률이 1분기 성장률이 이례적으로 높게 나온 것에 따른 기저효과가 있긴 하지만 –0.2%로 역성장했다. 주가상승률도 전쟁 등과 같은 특수환경에 놓여 있는 국가를 제외하고는 최하위권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우리 경제와 증시를 지탱해 왔던 수출도 날로 거세지는 보호주의와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불투명해지고 있는 점이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수급상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확전 여부에 따라 충격도 예상된다. 사정이 이런데 다른 국가와 같이 선제적인 완충 능력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통화정책은 피벗이 가장 늦어지고 있고 재정지출은 ‘야대여소(野大與小)’ 입법 구조로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감세는 고사하고 금투세 폐지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증세를 정상화시키는 노력도 쉽지 않다. 기득권과 결부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은 더 요원하다. 오히려 뇌물, 금융사고, 낙하산 인사 등과 같은 구조조정에 역행하는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원·달러 환율이 외국인 자금이탈 간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는 임계적인 1400원을 넘어서면 실제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제2 외환위기설이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국채지수(WGBI) 선진국에 편입돼 최대 100조원이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나서 우리 경제의 투자 매력을 끌어올려야 할 때다.
그 답은 나와 있다. 통화정책은 10월 금융통화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것을 계기로 선진국의 피벗 행렬에 동참하고 재정정책은 경직성 항목을 줄여 투자성 항목으로 조정하는 ‘페이고(paygo)’를 추진해야 한다. 우리 경제에 최대 아킬레스건인 정치권은 프로보노 퍼블릭코 정신을 발휘해 금투세 폐지 등과 같은 현안을 서둘러 마무리해 줘야 한다.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역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하는 속에 환율변동폭마저 크게 확대됨에 따라 기업들이 환 위험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9월 FOMC 회의에서 빅컷을 단행할 것을 계기로 Fed가 본격적으로 금리인하에 나설 경우 미국 달러화 가치도 주요 통화별로 차별화 현상이 심화돼 환율변동폭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환 위험은 환율변동으로 인해 기업의 경제적 가치가 변동할 수 있는 확률을 말한다. 문제는 환 위험은 인식범위와 관리기법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환 위험 관리에 목적을 명확히 설정한 후에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들어 미국 주식을 많이 투자하는 개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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