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꿈인데 피겨 3시간씩"…대치키즈들이 스포츠하는 이유 [대치동 이야기 ?]

입력 2024-10-21 06:39   수정 2024-10-21 07:01

‘사교육 1번지’의 대명사가 된 대치동 일대가 일터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대치동 학생들과 부모들의 일상을 면밀히 지켜봐 왔다.

대치동 사람이면서도 대치동 사람이 아닌, ‘대치동’을 어느 정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란 얘기다. 학원가 주변의 수많은 식당과 카페, 그리고 병원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교육의 중심의 설 아이와 학부모를 마주하는 교육 컨설턴트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대치동 엄마들이 단순히 ‘쥐 잡듯’ 아이의 교육에만 투자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이들이 바라본 대치동은 어떤 모습일까.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는 ‘에필로그’를 통해 대치동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바라본 대치동 사람들 이야기를 연재한다.



"평범하지 않은 스포츠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많이 찾아 옵니다. ‘피겨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자부심이 되기도 하니까요."

20일 만난 손지윤 아이스웍스 피겨팀장이 먼저 꺼낸 얘기다. 그는 "대치동에는 고급 문화를 어린 나이부터 접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피겨를 배우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골프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손 팀장을 만난 건 이날 오후 5시, 한티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아이스웍스에서였다. 네 개의 링크 가운데 한 개의 링크에서는 피겨 수업, 다른 두 개의 링크에서는 아이스하키 수업이 한창이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통유리창을 통해 아이들의 수업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거나, 격려를 보냈다.

손 팀장이 진행하는 피겨 수업에서는 기술 연습이 진행됐다. 스케이트로 항아리 모양을 그리며 뒤로 가기, 반원을 그리며 앞으로 가기 등을 연습했다. 네 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진도에 맞춰 손 팀장의 지도를 받았다.



대치동 학부모들 사이에서 빙상 스포츠 학원은 큰 인기다. 여자 아이들은 피겨, 남자 아이들은 아이스하키를 일찌감치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스하키 5~7명 중 1~2명은 여자 아이들이다. 취학 전인 5살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가 가장 많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겨 학원은 다른 학원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바쁜 일정 가운데 ‘테트리스’처럼 짜맞춰진다. 피겨를 하기 전후에 다른 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주 1~2회, 약 1시간 내외의 그룹 수업을 듣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부모님의 권유로 시작하지만, 일부 학생들은 공부하듯 피겨에도 집념을 발휘하기도 한다. 손 팀장은 "의사가 꿈인 한 초등 저학년 학생은 한 번에 3~4시간 연속으로 레슨을 듣는다"며 "선수들도 3시간 이상 스케이트를 신고 있으면 발이 무척 아픈데도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이 학생은 배운 기술을 익히지 못하면 집에 가지 않고 싶지 않아 울기도 한다"며 "하나에 꽂히면 해내는 습관이 있어 공부도 잘하는 것이라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이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공부를 하며 다졌던 끈기와 집중력을 피겨 학원에서도 보여줍니다."

이렇게 실력을 키운 아이들은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손 팀장은 "학부모들은 대회를 통해 큰 링크장 안에 혼자 들어가 그 압박감을 이겨내는 훈련을 시키고 싶어한다"며 "대회 참가를 위해서는 개별적인 레슨과 안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이들 대치동 학생들의 일과는 학업 위주로 돌아간다. 선생님에게 털어놓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성적'이다. 손 팀장은 "아이들은 주로 오늘 시험에서 몇 점을 맞았는지, 자신이 어느 과목을 잘 하는지 말하고 싶어한다"며 "5살 남짓 되는 학생은 그날 배운 수학 문제를 얼음 위에 쓰고 풀어 보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피겨 학원이 많은 학원 중 하나에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앉아서 공부하는 다른 학원과는 다른, '힐링'의 공간이 되기를 원한다. 손 팀장은 "교과 관련 학원에서는 빠듯하게 진도를 쫓아가고, 문제를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피겨만큼은 잘하지 않아도 재미있는 시간으로 느꼈으면 좋겠다"며 "어려움과 한계보다는 성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도 과정에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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