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세금 12조 투입하는데 '흑자 재정'이라는 건강보험

입력 2024-10-17 17:49   수정 2024-10-18 00:25

“10조원이 넘는 국고를 지원해서 흑자라면 ‘가짜흑자’ 아닙니까.”

지난 16일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장에서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에게 “건강보험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며 이렇게 따져 묻자 국감장엔 잠깐 침묵이 흘렀다. 정 이사장은 “건보 지출을 관리할 필요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지만, 가짜흑자 여부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다.

건보는 재정 관점에선 사실상 ‘0점짜리’ 제도다. 건보는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1997년 이후 보험료 수입이 급여 지출을 넘어선 적이 한 해도 없다. 지난해까지 27년간 보험료 수입은 914조6000억원, 병·의원에 지급된 급여와 관리운영비를 포함한 지출액은 1038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총 124조2000억원의 적자를 냈다는 의미다. 이런 적자를 메꾼 것은 140조9000억원에 달하는 국고 지원이었다.

별도의 규정도 없이 건보 적자를 국고로 메꿔주는 파행적 운영이 이어지자 정부는 2007년 건강보험법 등을 개정해 예산의 범위 내에서 예상 건보료 수입의 20% 상당을 국고로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러면서 10년 후면 일몰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10년 안에 재정을 정상화하란 취지에서다.

이 규정은 총 네 차례의 일몰 연장을 통해 2027년까지 연장됐다. 그 사이 2001년 14조1000억원이던 건보 지출은 지난해 90조8000억원으로 여섯 배 넘게 늘었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 3.4%였던 건보료율이 7.09%로 올랐다.

부족한 틈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채웠다. 2001년 2조6000억원이던 국고 지원 규모는 올해 12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국가 경제 성장에 사용되는 산업통상자원부 예산(11조5000억원)보다 많은 액수다.

보험료 수입으로 지출을 충당하지 못해 국고를 지원받으면서도 정부는 건보 재정을 ‘흑자 재정’이라고 규정한다. 전문가들은 건보 지출에 엄격한 통제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가짜흑자가 보여주는 착시로 인해 건보 지출 개혁이 후순위로 밀린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수가를 통제해 지출을 억제한다고 하지만, 병원은 ‘박리다매’식으로 수입을 늘린다. 이렇게 늘어난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보험료를 올리고 그것도 모자라 세금을 투입한다. 그런데도 국회로부터 통제받지 않는다.

지금의 건보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거의 모든 전문가가 비판한다. 김윤희 인하대 의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올해부터 적자로 전환해 2042년이면 누적 적자가 563조원으로 불어난다. 건강보험을 진짜 흑자 구조로 만들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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