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러닝 크루'(Running Crew)를 바라보는 시선이 언제부턴가 싸늘해졌어요. 때마침 정기 모임에도 자주 참석하지 못해 눈치가 보이기도 해서 두 달 전 탈퇴했어요. 혼자 뛰는 지금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합니다."
17일 저녁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만난 40대 직장인 최모 씨는 "집 근처 마포역에서 여기까지 뛰어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러닝 크루에 속하지 않고 혼자 뛰는 이른바 '혼뛰족'이다. 최씨는 "혼자 운동하니까 뛰는 시간대나 코스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며 "나한테 맞는 운동 강도로 뛰니까 러닝이 더 재밌어졌다"고 전했다.
러닝 크루를 탈퇴해 '혼뛰족'을 자처하는 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러닝 크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있는 데다가 혼자 뛰는 운동인 러닝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이날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도 러닝 크루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최소 5명에서 많게는 20명 가까이 모여 산책로 한쪽을 차지한 채 우르르 지나갔다. 단체로 모여 뛰는 러너들이 워낙 많다 보니, 그 사이에서 고독하게 달리는 혼뛰족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러닝 열풍'과 무관하게 원래 혼자 운동을 즐기던 이들도 있지만, 최근엔 러닝 크루를 탈퇴하고 혼자 뛰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소지품을 정리하며 홀로 뛸 준비를 하던 20대 대학원생 허씨도 지난달 초까진 러닝 크루에 속해있었다.
허씨는 "러닝 크루에 있을 땐 거의 매일 오후 8시 반에 모여서 운동했는데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무리해서 맞추면 일에 지장이 가더라"라며 "지금은 원하는 시간대에 혼자 뛰거나 가끔 지인 한두 명과 시간 맞춰 뛰는 식"이라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이모 씨는 "올여름 러닝에 입문하면서 바로 러닝 크루에 가입했다가 한 달 반 만에 탈퇴했다. 원래 습관을 들이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더 남아있을 필요가 없었다"며 "개인차일 뿐이지 다 같이 뛴다고 능률이 올라간다는 것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혼뛰족을 자처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데엔 러닝 크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는 탓도 크다는 분석이다. 단체로 뛰며 고성을 지르거나, 과하게 공간을 차지하는 등 러닝 크루의 민폐 행위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런라니'(러너+고라니)라는 비하 표현까지 생겼을 정도다.
앞서 서울 서초구는 반포종합운동장에서 5명 이상 단체달리기를 제한하는 '러닝 트랙 이용 규칙'을 신설, 이달 초부터 이를 시행하고 있다. 평소 이 운동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러닝 크루가 난립하는 데 따라 많은 불편함을 겪어 왔다.
이날도 일부 러닝 크루가 시민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등 민폐 행위가 목격됐다. 여자친구와 공원을 걷던 김주환(24) 씨는 "산책로를 건너 중앙 공터로 가려는 데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놀랐다"며 "주변 시민들을 잘 살피면서 뛰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혼자 공원을 달리던 최씨는 "러닝 크루에 있을 때 일부 회원은 같은 러너가 봐도 눈살 찌푸려지는 행위를 수시로 했다. 대표적으로 운동 막바지에 뒤처진 이들을 위해 응원한다고 소리 지르는 시간이 있었는데 진짜 부끄러웠다"며 "괜히 싸잡아서 욕먹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올바른 러닝 문화 정착을 위해 자정 노력을 기울이는 러닝 크루들도 등장했다. 경남 창원에서 101명의 정회원을 보유한 A 러닝 크루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러닝 에티켓을 올렸다. 단체로 뛸 때 인원을 6명~8명을 권장하고, 보행자 보호를 위해 상황에 따라 도보를 우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0년 만들어진 한 러닝 크루 회장인 30대 정모 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러닝 크루가 지나가면 손뼉 쳐주는 시민들도 있었는데, 일부 러닝 크루의 민폐로 인해 올초부터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다"며 "현재 단체로 러닝을 시작해도 5명으로 쪼개서 간격을 두고 달리거나, 보행자가 보이면 무조건 속도를 줄이는 등 수칙을 재정비했다"고 밝혔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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