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적용 기기 개발로 PC·모바일용 반도체 시장도 회복 국면에 들어갔다. AI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17일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
이틀 새 나온 글로벌 반도체기업 수장들의 상반된 업황 전망이다. 반도체산업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두 최고경영자(CEO)가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인 건 갈수록 짙어지는 반도체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여파다. 주력 사업이 AI 반도체인지, AI 가속기(데이터 학습·추론에 특화한 반도체 패키지) 1위 업체 엔비디아 공급망에 합류했는지, 고객사 맞춤형 사업 구조를 잘 짰는지 여부에 따라 새로운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고 있다.
AI 시대 글로벌 반도체산업의 메가 트렌드는 사업별 ‘특화’와 기업 간 ‘분업화’로 요약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이종(異種) 최첨단 반도체를 패키징해 만드는 ‘AI 시대의 필수재’ AI 가속기의 영향이 크다. 구글 등 고객사 입맛에 맞는 고성능 AI 가속기를 개발하기 위해선 각 부품 역시 최고 품질을 갖춰야 한다. AI 가속기를 설계하고 판매하는 1위 업체 엔비디아로선 엄격한 품질 인증(퀄리파이 테스트) 과정을 통과한 소수 협력사에 주문을 몰아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탄생한 게 ‘팀 엔비디아’로 불리는 AI 가속기 동맹이다. 최첨단 HBM 세계 1위 SK하이닉스(2024년 점유율 53%), 엔비디아가 설계한 GPU를 만들고 HBM과 묶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 TSMC(2분기 점유율 62.3%)가 팀 엔비디아의 멤버다. 이들은 엔비디아의 A100, H200 같은 고성능 AI 가속기가 ‘없어서 못 파는’ 인기를 누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고객 맞춤형 제품을 발 빠르게 생산하는 능력도 AI 반도체 시대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처럼 표준 규격의 제품을 찍어내듯 대량 생산하고, 약간 우세한 성능과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맞춤형 트렌드는 파운드리는 물론 ‘상품(commodity)’ 성격이 강한 메모리 반도체로 확산하고 있다. HBM 시장에서도 내년부터 고객의 주문을 설계 단계부터 직접 반영하는 ‘커스텀 HBM’이 대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TSMC와의 AI 칩 수주 경쟁에서 밀린 삼성과 인텔이 투자를 축소하면서 ASML은 3분기 수주액(26억3300만유로)이 2분기(55억6700만유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판매 절벽’에 부딪혔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삼성전자가 미국 파운드리에 들일 예정이던 ASML 장비 반입 일정을 연기했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진 팀 엔비디아로 불리는 기업들이 AI 반도체 시대의 승자로 평가받고 있다. 연초 이후 현재까지 엔비디아(184.3%), TSMC(83%), SK하이닉스(31.5%) 주가 상승률이 경쟁사를 압도하는 게 대표적이다. 설계, 생산, 최첨단 패키징 등 모든 사업을 다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 삼성전자와 인텔은 한발 밀린 상황이다. 과거엔 모든 사업을 잘할 수 있는 게 장점으로 꼽혔지만 ‘분업화’ 시대엔 투자 부담을 높이고 전략적 판단을 늦추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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