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의 자산 중 대부분은 부동산이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산이란 '몇 개를 소유하느냐'보다 '얼마를 보유하느냐'라는 가치의 평가가 더 중요합니다.
때문에 집값이 다른 자산에 비해 고가인 점을 고려하면 집 1가구만 가지고 있어도 전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셈입니다.
서울은 평범한 샐러리맨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3년을 넘게 모아야 중간 정도 수준의 주택을 살 수 있습니다. 올해 3분기 기준 주택 중위 가격은 6억7000만원이고 서울 직장인들의 연평균 근로소득 약 4900만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입니다.
하지만 월급을 한 푼도 안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과거와는 다르게 월급 인상이 물가 상승 폭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월급 400여만원으로는 주거비, 식비, 교통비, 생활비 등을 제외하면 절반을 모으기도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평범한 K직장인이 성실하게 저축만으로 서울 내에서 내 집 마련을 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란 얘기입니다. 또 현금 자산을 불리는 동안 서울 주택 가격은 더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 현금을 모으면 일정 부분은 대출받아 주택 구입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주택 공급자의 입장도 비슷합니다. 신도시를 지정해 주택을 공급하는 것과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주택 공급 모두 마찬가지로 토지비 및 건설에 드는 모든 비용을 자부담으로 사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보통 사업계획의 현금흐름과 리스크를 평가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아 건설을 시작하고 선분양을 통해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받으면서 대출금을 갚아 나가게 됩니다.
주택시장에서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대출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금리'가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금리 시기에는 주택 공급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자 비용이 적게 들어 사업 환경이 좋아질 가능성이 높고 수요자의 입장에서도 매매, 전세 대출 이자가 적어져 주택을 매입하기에 좋은 시기가 됩니다.
2019년 말부터 2024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금리 변화와 이에 따른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 가격의 등락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이라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금리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주택을 매입하는 수요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매입 시점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수요자에게 두 가지 영향을 미칩니다.
먼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을 결정합니다. 주택담보대출 가능 금액의 최대치는 담보가치에 대한 대출 비율인 LTV로 정해지고, 대출받는 사람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따라서 최종 결정됩니다.
다시 말해서 매입 대상 주택을 담보로 정부에서 정하는 비율만큼이 대출의 상한선이 되지만, 모든 사람이 그만큼 빌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매월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지를 DSR로 계산해 결정하게 됩니다. 올해 기준으로는 DSR 40%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가 주택담보대출이 가능한데 신규 대출을 계산할 때도 대출 상환 기간, 금리 등을 적용해서 산정합니다.
결국 DSR은 차주의 연 소득, 기존 부채, 금리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소득과 기존 부채가 크게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는 금리의 수준이 가능 대출 금액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다음으로 적용받는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따라서 매월 원리금 상환액 부담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서 3억원을 30년 만기로 대출받는다고 했을 때 금리 연 3%를 적용하면 월 126만4812원의 원리금 상환액을 부담하게 됩니다. 그런데 금리가 5%면 원리금 상환액은 161만465원으로, 7%면 199만5907원이 됩니다. 한 달에 대출금 상환액이 몇십만원씩 높아지는 것은 개인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차주의 대출 가능 금액과 매월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 부담에 많은 영향을 주는 금리는 주택 시장에서 매우 민감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적어지고 부담은 높아지는 고금리 시기에는 매입 수요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거래량과 주택가격 상승률은 동반 하락하게 됩니다.
다만 2006년부터 지금까지 금리(기준금리 및 주택담보대출금리)와 주택 가격의 추이를 보면 시장은 상식적으로만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예컨대 2006년 말 서울 아파트 가격은 한 달 새 6% 가까이 오르는데 기준금리는 연 4.5%(2006년 8월~2007년 6월), 주택담보대출금리는 연 5% 후반대로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2008년에는 1월부터 9월까지 기준금리가 연 5%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신규 주택담보대출금리는 연 7% 전후의 고금리를 형성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동 기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한 번도 하락하지 않고 누적 약 10% 상승이라는 높은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급격한 금리 등락을 겪은 2019년 12월 이후 금리와 아파트 거래량, 가격 변동률의 추이는 금리, 특히 주택담보대출금리와 아파트 거래량 및 변동률은 거의 완벽하게 반비례하고 있습니다.
이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약 3년간의 통화 정책 긴축에 대한 기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3분기 과열되었던 서울 주택시장의 분위기는 오히려 잠잠합니다. 가계부채 급증의 부담으로 9월부터 DSR 강화 등 촘촘한 대출 규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속도의 문제이지 향후 금리는 인하될 가능성이 큰 만큼 주택 수요도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내 집 마련 결정을 근시안적인 요인으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금리로 인한 주택 수급 밸런스를 따져보면서 신중하게 결정할 것을 권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 전문위원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