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이 승인했다(JENSEN APPROVED)’. 지난 3월 황 CEO가 삼성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12단 시제품에 남긴 사인이다. 삼성의 HBM3E가 곧 엔비디아에 들어갈 것이란 기대가 커졌지만 지금도 ‘테스트 중’이다. 이 일에 대한 해석 중 하나는 ‘삼성이 이용당했다’는 것이다. 당시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와 HBM3E 납품 협상을 하고 있던 상황. ‘너희 말고도 공급사는 많다’고 압박하고 단가를 깎기 위한 황 CEO의 고단수란 얘기다.
최근 외신을 통해 불거진 엔비디아와 TSMC의 불화설도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 많다. 여기에도 삼성전자가 등장한다. TSMC에 실망한 엔비디아가 삼성에 일부 칩 위탁생산을 맡길 것이란 관측이다. 공교롭게도 TSMC는 최근 가격 10% 인상을 추진 중이다. 이번에도 ‘삼성을 이용해 단가를 깎나’라는 의구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런 기업을 상대로 HBM 납품에 성공해야 하는 게 삼성전자의 과제다. 경쟁사가 짜놓은 HBM 스펙의 틀에 자사 제품을 끼워 맞춰야 하고 HBM과 엔비디아 칩의 조립(패키징)을 담당하는 TSMC의 검증도 통과해야 한다. 모래주머니 서너 개는 차고 뛰는 셈이다.
기댈 건 기술력뿐이다. 지난 5월 반도체부문장에 취임한 전영현 부회장은 ‘기술력 복원’을 지상 과제로 삼고 담금질에 들어갔다. 내년 하반기 6세대 HBM(HBM4) 납품 경쟁에선 붙어볼 만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32년 메모리 세계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전자다. 다시 한번 ‘위기 극복의 신화’를 기대한다.
황정수 산업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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