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이라고 해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지지하라는 법은 없으니까요.”(익명의 공화당 지지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진짜로 자기가 말한 대로 책임감 있게 경제정책을 펼칠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민주당 지지자 재러스키 화이트)
미국 흑인 사회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여부를 두고 쪼개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흑인은 민주당을 충실히 지지하는 ‘집토끼’로 분류됐다. 최근엔 다르다. 흑인인데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젊은 흑인 남성 사이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 시절보다 ‘흑인’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지명된 후 이런 균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50세 미만 흑인 남성 4분의 1 이상이 올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NAACP)가 나온 후 흑인 사회 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꾸준히 관찰되고 있다. 12일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가 시행한 조사에서 흑인의 15%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민주당은 부랴부랴 흑인 남성을 겨냥한 공약을 쏟아냈다.
하지만 당사자들 생각은 다르다. 일단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흑인 남성은 “세금을 낮춰주면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 경제 공약이 내 생각과 비슷하다”며 “흑인이 매번 민주당에만 표를 주니까 민주당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흑인 남성 지지율이 떨어지자 마리화나 소지를 더 허용하자는 식의 민주당 접근법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흑인 남성은 오랫동안 지지해온 정당이 더 이상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범한 흑인 남성과 민주당 지도층 간 계급 차이도 민주당 이탈 요인으로 지목된다. 라손 레이 등은 18일 브루킹스연구소 기고문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버드대를 나온 사실, 해리스 부통령이 하워드대와 우수한 여학생 모임인 알파카파알파 회원이었던 점 등은 흑인 남성과의 간극을 더 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흑인 남성 중 10%는 연간 최소 10만달러를 벌고, 20% 미만이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며 “인종차별 시대에는 (흑인) 교수와 청소부가 같은 곳에 살았겠지만 이제는 사회적 계층과 네트워크가 분리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진짜 우리 같은 흑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화이트 씨(41)는 “솔직히 말해 (인도인 어머니를 둔) 해리스 부통령은 진짜 흑인이 아니고 (하와이 출신인) 오바마 전 대통령도 아니다”며 “미셸 오바마가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흑인”이라고 했다. 해리스 부통령이나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노예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흑인 커뮤니티에서 민주당 지지자의 목소리가 강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를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젊은 흑인 남성 가운데 ‘숨은 트럼프 지지자(샤이 트럼프)’가 예상보다 많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백인 노동자가 주로 ‘샤이 트럼프’였던 현상이 인종을 바꿔서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레일라 파델 NPR 팟캐스트 진행자는 “정치 문제는 종종 말다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젊은 흑인 남성이 자기 의견을 솔직히 말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타=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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