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배추는 얘기가 다릅니다.”(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이번 주에만 생방송 프로그램에 네 차례 출연한다. 치솟는 배추값에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다. 관가에선 “농식품부는 ‘배추부’, 송 장관은 ‘배추 장관’이 됐다”는 우스개도 나온다.
22일 농식품부에 따르면 송 장관은 이날 오전 공중파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오후엔 보도전문 채널의 뉴스 프로그램에 각각 생방송으로 출연한다. 오는 23일과 25일에도 생방송 출연이 예정돼 있다. 출연 시간도 밤낮이 따로 없다.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은 오전 8시에 진행됐지만 25일 출연하는 뉴스 프로그램은 밤 11시에 방송된다.
농식품부 장관이 일주일에 생방송 프로그램을 네차례씩이나 잇따라 출연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간 송 장관의 주간 일정은 농가 현장 방문이 주를 이뤘다.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할 일이 있을 때는 출입 기자단 간담회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방송이라는 부담에도 출연에 나선 이유는 ‘배추’ 때문이다. 시민들이 김장철을 두려워할 정도로 배추 가격이 뛰자 장관이 직접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배추(상품) 한 포기당 소매가격은 지난달 27일 9963원을 기록하며 1만원에 육박했다가 소폭 하락해 9000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물가지수에서도 배추가 ‘원흉’이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생산자물가지수는 119.17로 전월 대비 0.2% 떨어졌지만, 농림수산품 물가지수는 5.3% 상승했다. 특히 농산물이 5.7% 상승했는데, 품목별로 보면 배추가 전월 대비 61.0%, 전년 대비로는 75% 뛰면서 전체적인 수치를 끌어올렸다.
농식품부는 올해 초 ‘금(金)사과’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하지만 당시보다도 최근 배추값 논란에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다.
송 장관이 잇따라 생방송 출연에 나선 배경에는 대통령실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배추 가격이 잡히지 않으면 국정 지지율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물가를 담당하는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용산(대통령실)에서 배추 가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지금처럼 '가격' 관련 기사에 예민했던 적이 많지 않다”고 했다.
정부의 배추 가격 예측이 빗나갔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추석이 지나면 배추 가격도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여름 무더위가 가을까지 이어져 여름배추 작황이 부진했다. 송 장관은 지난달 말에도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10월 10일 전후로 준고랭지 배추 물량이 늘면서 공급량이 안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들이 체감할 만큼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았다.
송 장관 스스로도 배추가격과 관련한 민심을 살피는데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올초 ‘사과 대란’을 겪은 송 장관으로선 “똑같은 전철을 밟아선 안된다”는 위기감을 느껴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장관님이 직접 '날짜와 시간을 불문하고 방송 스케줄을 잡아달라'고 홍보실에 특별 주문했다”며 “원래 예정됐던 방송 출연 일정도 좀더 앞당겨달라고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배추가격은 언제 내려갈까. 농식품부는 이달 하순부터는 가격이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보고 있다. 배추 출하지가 경북과 충북으로 확대되고 있어서다. 이미 도매가격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당 도매가격은 9월 중순 9537원까지 치솟았다가 지난 21일 5610원까지 내렸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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