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인공지능(AI)의 번역 경쟁력을 겨루는 ‘국제기계번역대회(WMT)’의 우승자는 예상 밖이었다. 주인공은 삼일회계법인이었다. 미국의 빅테크가 아니라 한국 회계법인이 수상하자 의아해하는 시선이 적잖았다. 삼일회계법인이 자체 개발한 대규모언어모델(LLM) ‘링고’는 번역 부문에서 챗GPT를 비롯한 여타 LLM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윤훈수 삼일회계법인 대표의 ‘AI 경영’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표는 22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체 AI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전문 인력을 여럿 충원하고 연구개발(R&D) 인프라를 마련했다”며 “회계업계 1위라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로도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일은 지난해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 등 자체 데이터센터를 활용하는 AI 인프라를 마련했다. 대부분 기업이 일시적으로 GPU를 빌려 쓰는 정도에 그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AI 조직은 디지털이노베이션랩, GEN AI팀 등 두 개로 나눠 확대했다. 회계 특화 AI 스타트업 CCK솔루션에도 지분 투자해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윤 대표는 “GEN AI팀이 개발한 링고는 회계·세무·ESG 분야 번역에 활용할 예정”이라며 “디지털이노베이션랩 개발자 8명이 개발한 AI 어카운턴트(회계사) 챗봇은 회계사 100여 명이 참여한 사용자 수용 테스트 등을 통해 내부 검증을 마쳤다”고 했다. 이 챗봇은 국내 회계 기준서와 해석서, 삼일 내부 문서 등을 대량 학습해 모호한 회계 처리 방법 등에 대한 질의에 답변을 준다.
윤 대표는 “기업들의 회계·세무 분야 디지털전환 수요가 상당하지만, 각사가 시스템 구축을 위해 담당 인력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니 기존 방식을 쓰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시기에 회계법인이 디지털 역량을 갖추면 각종 산업별 회계 처리 전문성을 살려 시장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분야 확대는 매출 확대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삼일회계법인의 2023회계연도 매출은 1조231억원을 기록해 회계업계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회계업계가 성장 둔화를 겪는 가운데 거둔 성과다. 윤 대표는 “디지털 프로덕트는 초반 구축 후에도 유지·보수 등 추가 매출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특징”이라며 “일부는 구독 모델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력인 회계감사 역시 고도화하고 있다. 광학문자인식(OCR)과 비전(시각) AI 기술을 활용해 수많은 개별 은행조회서 내용을 자동으로 정리·집계하고, 각 수치가 맞는지 AI가 1차 검증을 한다. 윤 대표는 “자동화를 적용하면 훨씬 높은 수준의 감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회계사들이 단순 반복 작업을 하지 않아 아낀 시간만큼을 더욱 까다로운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삼일회계법인은 지난달 신규 채용을 마쳤다. 올해 공인회계사(CPA) 시험 수석 합격자와 최연소 합격자가 모두 삼일을 택했다. 윤 대표는 “‘삼일은 구성원을 성장시킨다’는 게 인재 기조”라며 “직원이 조직에 기여하면 직원의 삶에도 발전이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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