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이자 코오롱 대표, 6선 국회의원 등을 거치며 정계와 산업계를 넘나들었던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숙환으로 23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이 전 부의장은 서울대병원에서 여러 질환으로 입원 치료 중이었고 최근 위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부의장 측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병을 앓아왔던 이 전 부의장이 별세했다"고 말했다.
1935년생으로 경북 영일 출신인 이 전 부의장은 경북 포항 동지상고(현 동지고)를 졸업했다. 1955년 육군사관학교 15기로 입학했으나 건강 악화로 자퇴 후 1957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입학, 1961년에 졸업했다.
이 전 부의장은 대한민국 섬유 산업 발전과 수출 확대에 기여한 전문 경영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코오롱 공채 1기 사원으로 입사해 코오롱 주식회사와 코오롱상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경영인으로서의 성취에 만족하지 않았다. 기업인 경험으로 국가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1988년 정계에 입문, 민주정의당(국민의힘 전신)에 입당했다. 경북 포항 남·울릉 13대부터 18대까지 6선 국회의원에 내리 당선됐다. 국회부의장, 운영위원장, 재정경제위원장 등 주요 당직을 두루 거쳤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으로 활약하며 금융개혁을 주도, ‘미스터 위기관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여러차례 ‘해결사’ 역할을 자임했다. 2002년 한나라당 지지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지자 당 사무총장으로서 천막당사, 중앙연수원 헌납 등의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등 당 재건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당시 총선에서 60석도 어렵다던 초기 관측을 뒤집고 121석의 성과를 내는데 일조했다.
이 전 부의장은 이 전 대통령의 대권 도전 준비 때부터 동생을 도와 당내 대선후보 경선 승리와 대통령 당선까지 크게 기여했다. 대통령 당선 당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 ‘상왕’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가교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의원외교에서도 성과를 냈다. 대통령의 일본특사단장과 한일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나서 1200권에 달하는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성사시켰다. 반환 반대여론이 높았던 일본 사회의 마음을 얻기 위해 75세 나이에 일본어 개인교습을 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는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를 뒷받침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리튬 확보를 위해 수 차례 볼리비아에 방문, 협력을 이끌어냈다. 반출이 금지돼 있던 우유니 호수 리튬 염수 수백 리터를 제공받았다. 당시의 협력은 한국이 2차전지 생산 최강국으로 거듭나는 기틀이 됐다.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서 <자원을 경영하라>를 펴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최신자 여사와 자녀 이지형, 이성은, 이지은 씨, 며느리 조재희 씨와 사위 구본천·오정석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 발인은 26일 오전 6시 30분이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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