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기후변화 및 완화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탄소 크레디트를 사고파는 자발적 탄소시장(VCM)이 존재해왔다. 최근에는 에너지 전환을 주도할 새로운 유형의 탄소 크레디트가 개발되고 있다. 전환 크레디트는 석탄발전소의 조기 폐쇄 프로젝트처럼 미래 탄소배출량을 줄이거나 회피하는 활동을 화폐화해 보완적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신재생에너지로의 빠른 전환을 돕는다.
특히 아시아 지역은 전 세계 온실가스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이 중 3분의 1은 석탄화력발전소(CFPP)에서 발생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석탄발전은 전력 생산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 평균 15년 미만으로 젊은 발전소가 많아 폐쇄하기가 쉽지 않다. 이 발전소가 계획대로 폐쇄 및 전환 절차를 밟으면 전환이 매우 늦어진다. 석탄발전소의 조기 폐쇄를 통해 빠른 시간 안에 탈탄소를 이루려면 상당한 규모의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자본 조달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최근 아시아권에서는 이 자금 조달 수단으로 전환 크레디트가 주목받고 있다.
전환 크레디트 부상
지난해 9월 싱가포르투자청과 매킨지앤컴퍼니는 석탄발전소를 조기 폐쇄하고 더 깨끗한 에너지원으로 대체해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통합 탄소 크레디트를 보완적 수단으로 사용하는 워킹 페이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는 계획보다 5년 일찍 1GW 전기를 생산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새로운 재생에너지 발전소로 대체하려면 GW당 약 3억 1000만 달러(약 4284억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계산했다. 이 중 7000만 달러(약 967억 원)는 전환 크레디트로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전환 크레디트 가격은 이산화탄소환산톤당 11~12달러로 책정한 가격이다.
CFPP의 조기 폐쇄 및 더 깨끗한 에너지원으로의 대체로 발생하는 크레디트는 탄소배출을 원천에서 비가역적으로 감소시킨다. 이는 고품질 크레디트로 분류될 수 있으며, 기존 회피 크레디트와 구별된다.
워킹 페이퍼에서는 전환 크레디트를 개발하기 위한 특수 목적 법인(SPV) 형태를 구성해 투자자, 대출기관, 발전소 소유주, 전력 구매자 및 전환 크레디트 구매자 등 모두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안했다. 또 원금 보호, 수익의 안정성과 매력, 넷제로 목표와 일치하는지 여부 등을 위해 보험상품, 크레디트 선물시장 창출 및 가격 하한선 설정, 규제 기관과 협력해 조건을 준수하는 방식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싱가포르는 오는 2030년 탄소세를 30~60달러로 인상할 예정이며,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통해 탄소세 대상이 되는 배출량의 5%까지 상쇄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탄소세 상쇄를 위해 탄소 크레디트를 구입하려는 기업에 전환 크레디트를 공급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싱가포르투자청은 전환 크레디트에 대한 솔루션을 확립하기 위해 전환 크레디트 연합(TRACTION)을 출범했다. 이 연합에는 미국 록펠러 재단과 아시아개발은행, 글래스고 금융연합(GANTZ), 국제에너지기구(IEA),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와 DBS 은행,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미즈호, 스미토모 등 미국·유럽·일본계 은행 등이 고루 포함돼 있다.
현재 이 솔루션에 기반한 전환 크레디트의 2가지 시범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다. 첫 번째는 필리핀 대기업 아얄라의 에너지 플랫폼 부문인 ACEN과 석탄·청정 신용 이니셔티브(CCCI)가 진행하는 필리핀의 남부 루손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프로젝트다. 발전소를 예상 만료 기간인 2040년에서 10년 앞서 폐쇄하는 대신 전환 크레디트를 발행하는 방식이다. 조기 폐쇄는 1900만 이산화탄소환산톤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회피하는 효과가 있다. 다른 하나는 필리핀 민다나오의 석탄발전소 폐쇄와 관련해 아시아개발은행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이러한 시범 프로젝트를 통해 전환 크레디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전환을 돕는 방법론 개발
미국 정부가 시작한 에너지 전환 액셀러레이터(ETA) 프로그램은 민간자본을 통한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돕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인도네시아가 아시아개발은행(ADB)와 협력해 서자바주의 치르본 석탄발전소를 2035년 조기 폐쇄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가장 큰 자발적 탄소시장 인증업체인 베라와 골드스탠다드는 ETA 지원을 받아 석탄발전소의 조기 폐쇄를 돕는 전환 크레디트 생성 방법론을 발표했다.
전환 크레디트는 자발적 탄소시장위원회(ICVCM)가 제시한 핵심 탄소 원칙(CCP) 및 유엔기후협약(UNFCC) 제6조 무결성 요구사항 같은 세계적 인정 표준과 일치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와 새로운 재생에너지로의 교체 속에서 감소된 순 배출량 혹은 회피된 배출량을 정량화한다. 최소 3년 동안 가동한 폐쇄 예정 대상이 아닌 발전소로 제한해 정상 가동 중인 발전소의 조기 폐쇄를 유인하도록 설계됐다.
다만 아직 파일럿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만큼 전환 크레디트에 대한 논란이 있다. 전력 생산업체인 중국전력공사(CLP)는 공장 조기 폐쇄를 대체하려면 1GW의 풍력이나 태양광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5억 달러(약 6912억 원)가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탄소 크레디트도 7000만 달러보다 많은 수준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기존 석탄발전 용량을 대체하기 위해 발전소 운영자에 대한 보상은 물론 재생에너지로 발전소를 전환하고, 새로운 전력망 인프라를 구축하며, 실직자를 지원하기 위해 드는 비용을 모두 계산한 경우다.
또 석탄의 단계적 폐지가 국가 에너지 정책과 재생에너지 도입, 송전 투자, 전력 가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전환 크레디트를 판매하고 나서 다시 석탄발전소 등 기존 에너지로 회귀하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전환 크레디트가 실행되려면 실제 정부 및 석탄발전소 운영자, 탄소 크레디트 표준 운영 기관 등에 더 많은 협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금융 기업 스탠다드차타드의 싱가포르 및 아세안 지역 최고경영자 패트릭 리는 “전환크레디트의 개발 및 거래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프로젝트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지, 어떻게 거래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전환 크레디트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황유식 그리너리 대표는 “최근 싱가포르가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을 유도하는 방안으로 자발적 시장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려 한다.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가이드를 제공하고 인증 센터를 지정하는 방식”이라며 “전환 크레디트는 그중 주목받는 탄소 크레디트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자발적 시장에서의 탄소 크레디트 초점은 감축(reduction)과 제거(removal)인데, 전환 크레디트는 빠른 감축 측면에서 석탄발전 폐쇄에 초점을 두고 있다”며 “폐쇄 예정 기한이 아닌 석탄발전소를 파일럿으로 선정한 것은 기존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를 먼저 폐쇄하면 노쇠한 석탄발전소는 퇴출이 더 빨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선 나무이엔알 대표도 “자발적 시장의 지평을 넓히는 전환 크레디트 개념이 아시아에서 나오는 것이 고무적이다”며 “탄소배출이 많은 아시아 지역에서 국가 간 협업이 이루어지면 매우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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