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꿀 ‘게임 체인저’를 개발 중이다. 자비에 라포스 코닝 첨단광학부 상용기술 이사는 “5~10년 뒤 실리콘 기반의 반도체 기판이 글라스 코어로 바뀌면 세계 반도체 기업의 순위도 뒤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설리번파크에 들어서면 중앙에 전시된 거대한 깔때기 모양의 장비가 눈에 들어온다. 1964년 코닝이 개발한 퓨전 공법의 핵심 장치다. 모래와 각종 재료를 고온에서 녹인 액체 상태의 유리를 수직으로 떨어뜨려 양쪽에서 만나게 한 다음 기판으로 굳히는 방식이다. 다른 기업의 플로팅 공법(용융된 주석 위에 액체 상태의 유리를 띄워 평평하게 만드는 방식)에 비해 균일한 두께와 높은 평탄도를 지닌 유리기판을 제작할 수 있다.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가능케 하는 핵심 소재다.
코닝은 이 공법을 활용해 초정밀 미세 회로가 필요한 반도체 유리기판을 ‘테스트’하고 있다. 라포스 이사는 “515㎜×510㎜ 크기의 글라스 코어 기판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고객사와 논의 중”이라며 “인공지능(AI) 가속기 등 여러 기능의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연결하려면 반도체 크기가 커야 하는데 글라스 코어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라스 코어는 실리콘에 비해 표면이 고르고 평평해 미세 회로 작업이 수월하고, 두께를 얇게 만들 수 있다. 코닝은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대신 여러 개의 칩을 쌓아 성능을 향상시키는 3차원(3D) 패키징에서 글라스 코어가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 유리의 깨짐 현상을 제거하는 등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라포스 이사는 “글라스 코어 시대가 본격화하려면 쌓아올린 칩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유리관통전극(TGV) 등 실리콘 기판에 맞춰져 있는 현재의 반도체 장비 생태계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며 “이 과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기존 장비와의 호환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코닝은 한때 주가가 1달러로 급락할 정도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제이민 아민 코닝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주력 사업으로 밀던 광통신 사업이 붕괴 직전까지 갔다”며 “그럼에도 R&D의 총본산인 설리번파크만은 사활을 걸고 지켰다”고 말했다. 이 덕분에 코닝은 미래 기술을 기반으로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했다. 광통신 위기 직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커버 유리인 ‘고릴라 글라스’를 개발하며 세계 최대 모바일 기기 커버 유리 기업으로 이름을 떨쳤다.
최근엔 AI 소재 기업으로 불린다. AI 열풍으로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해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광섬유 수요가 폭발하면서다. 광섬유는 빛 신호를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유리 가닥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한 번에 빠르게 전송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가 데이터센터를 잇따라 짓기 시작하면서 코닝의 광섬유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코닝의 또 다른 미래 사업은 차량 디스플레이용 유리 사업이다. 자율주행 차량 시대가 도래하면 코닝 유리의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관측했다. 고열이 아닌 실온에서도 구부릴 수 있는 유리인 ‘오토그레이드 고릴라 글라스’ 개발에 성공했다. 이 기술엔 콜드폼 기술 공정을 적용했다. 일반 유리보다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 데다 차량 전체의 무게를 줄일 수 있어 연료 효율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량 디스플레이 전면에 3D 영상을 구현하는 데도 장점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매출 126억달러(약 17조4200억원)에 영업이익 14억달러(약 1조9400억원)를 거둔 코닝은 올해 AI 열풍 덕에 호실적이 예상된다. 코닝은 올해부터 3년간 매출을 30억달러 늘린다는 목표를 세워놨다.
뉴욕(코닝)=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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