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숙박 공유 플랫폼 기업인 에어비앤비가 ‘최고인사책임자(CHRO)’를 ‘최고직원경험책임자(CEEO)’로 바꾸면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직원 경험’이라는 개념이 확산하기 시작했다.
직원 경험이란 입사부터 퇴사까지 구성원이 회사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은 인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앞다투어 직원 경험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왔는데, 직원 경험이 특히 중요해진 것은 일터에 밀레니얼 세대의 비중이 늘어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기존 세대가 승진이나 보상에 가중치를 두던 것과 달리 일터에서 개인적 가치와 의미를 찾고 성장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직은 직원의 생애주기에 따라 의미 있는 성장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과제로 안게 됐다.
한편 코로나19 이후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낯설지 않게 되면서 직원 경험에 대한 구성원의 기대치는 계속 변해왔다. 업무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기업 관점이 아니라 직원 관점에서 일과 삶의 균형 및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 Z세대가 조직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일터 안팎에서 일의 의미를 찾고 성공을 지원해줄 기업을 원하고 있다. 이에 새로운 현실에 맞는 인간 중심의 직원 경험, 즉 ‘인간 경험’이 떠오르고 있다. 인간 경험은 단순히 일터에서만 직원 경험을 높이는 것을 넘어 구성원의 삶 전체에서 개인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것에 중점을 둔다.
직원 경험과 인간 경험은 둘 다 구성원 관점의 경험을 중시한다. 다만 인간 경험은 일터를 포함해 다양성을 가진 구성원 개인의 전반적 삶, 이해관계자까지 광범위하게 초점을 맞춘다. 구성원의 신체적 건강, 정신적 안녕, 심지어 재정 상태나 가족 관계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가령 어린 자녀의 육아는 많은 직장인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다. 이들을 위해 유연한 근무 시간을 제시할 수 있다. 재정적 여유가 충분히 있는 기업은 아예 사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처럼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구성원이 잡념 없이 일터에서 몰입할 수 있도록 개인화될 필요와 욕구를 조직이 제공해 주는 것이 곧 인간 경험이다.
그렇다면 직원 경험에서 인간 경험으로 기업이 지금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대교체로 인한 일과 직장에 대한 인식 변화,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 그리고 전 세계를 덮쳤던 팬데믹이 일터의 모습과 업무 현실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일해야만 직장에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구성원들은 집에서도 일할 수 있고 각자 처한 상황과 업무 환경을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특히 구성원의 다양성 증가로 이들의 필요와 기대도 동시에 다양해지고 있다. 인간 경험은 이러한 다양성을 포용하고 각기 다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맞춤형 접근 방식이다.
인간 경험이 중시되는 환경에서 구성원은 더욱 자유롭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고 소속감과 만족감을 가지게 된다. 궁극적으로 구성원이 일의 의미를 찾고 몰입하는 것은 직접적인 성과 향상으로 이어져 조직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리더의 역할은 무엇일까.
직원 경험보다 더 광범위한 인간적 경험의 요소를 이해하고 지원하려면 구성원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특히 구성원의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가령 “아이가 아파서 이번 주에는 휴가를 쓰고 싶다”고 말하는 직원에게 “애들이 다 아프면서 크는 거지, 김 대리도 참 어지간하네”라는 식의 대응은 최악의 인간 경험을 주는 것이다.
지속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다면 구성원이 어떠한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일하는 순간만큼은 성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맞춤형 보살핌이 필요하다.
협업 도구로 유명한 소프트웨어 기업, 슬랙(Slack)의 최고경영자(CEO)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조직에서 효과적인 인간 경험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5월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 당시 그는 흑인과 유색인종 직원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의 기회를 제공했다. 미국 내 다른 대부분의 기업에서 흑인 직원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해야 했지만 버터필드는 정서적으로 불안한 직원들에게 ‘감정 휴가’를 권장하며 유급 휴가 혜택을 받도록 했다.
‘감정 휴가’를 통해 직원들이 사회적 불의와 사건으로 인한 감정적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한 것이다. CEO의 이러한 메시지는 회사가 구성원의 감정적 안정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모두가 진정으로 ‘내가 여기 속해 있으면 편안하다’고 느끼고 모두가 자신의 100%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인간 경험의 핵심이다. 구성원이 개인적인 문제로 일에 집중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업무 환경을 조정해 성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아픈 자녀가 있는 직원을 위해 병원을 알아봐 주거나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업무 시간을 조정해 주는 등 일할 때만큼은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경험이 중요해진 경영 환경에서 진정한 리더는 업무를 넘어 인생에서의 멘토로 역할이 넓어지고 있다.
일과 삶의 교차점에서 ‘핵심 순간(moments that matter)’을 파악해 다양한 유형의 구성원 특성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기존의 직원 대상 설문 조사는 직원 참여나 관리자의 효과성과 같은 전통적인 주제 혹은 온보딩부터 승진, 퇴사와 같은 직장에서의 생애주기에만 초점을 맞춘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직원 경험에서 인간 경험으로 확장된 정의를 고려하면 구성원에게 귀 기울여야 하는 범위 또한 넓어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구성원이 육아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등 개인적 사안까지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HR 조직에서는 구성원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식적·비공식적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등 기술을 통해 일상적 업무 대체가 가능해지고 인간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인지적, 사회적, 감정적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 판단력, 협업, 창의성 등을 포함하는 이런 역량은 조직이 구성원을 톱니바퀴처럼 취급할 때는 발휘하기 어렵다.
대신 최고 수준의 몰입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구성원 스스로 일의 의미를 정의하고 필요에 따라 일하는 방식을 디자인할 기회는 물론이고 신체적·정신적 웰빙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구성원 개개인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것은 배려나 복지 차원이 아니다. 구성원 스스로 일의 의미를 찾고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방식을 인정하는 유연성을 통해 결국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인재 전쟁에서 승리하길 원하는가. 다양한 구성원의 일과 삶이 교차하는 주요 지점마다 어떠한 긍정적인 경험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에서 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김민경 IGM세계경영연구원 인사이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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