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옷 판매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버렸어요. 날씨 감안해서 적게 주문한 건데도 재고가 잔뜩 남았어요."
동대문 패션타운에서 여성 의류 소매 매장을 운영하는 50대 박모 씨는 "이번주 내내 패딩이 더 잘 팔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상 최악의 장기폭염을 기록하는 등 줄곧 더웠다가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가을 의류가 팔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재고를 어떻게 처리할 건지 묻는 질문에 박 씨는 "오프라인 매장은 우선 겨울옷 위주로 진열하고,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을 옷을 세일가로 판매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달까지 이어진 폭염(일 최고기온 33도 이상)이 끝나자마자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의류 업계에서는 재고로 쌓인 가을 의류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상인들은 발 빠르게 패딩 등 겨울 의류 판매에 집중하는가 하면, 가을 의류는 '세일가'로 처분하는 상황이다.
APM 쇼핑몰 1층에서 여성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이진아 씨는 "9월에 날씨가 선선해야 가을 옷을 파는데 (올해는) 너무 더웠다"며 "트렌치코트 등 얇은 의류는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구매한다. 애초에 가을 옷 주문량도 많이 줄였다"고 말했다.
트위드 소재의 자켓과 가디건이 진열돼 있던 매장을 운영하는 전모 씨도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 양털 조끼나 숏패딩 등 겨울 신상이 더 잘 나간다"고 밝혔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에 따르면, 지난 19일 강원도 북부 산지에 올해 여름 이후 처음 한파 특보가 발효됐다. 지난해 한파 특보가 처음 내려진 시점은 2023년 11월 6일이었다. 역대급 폭염 기록을 경신한 데 비해 추위는 지난해보다 더 빨리 찾아온 것이다. 시민들이 가을을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러한 분위기는 백화점과 온라인 패션 플랫폼에서도 감지되는 모양새다. 전날 방문한 강남구 일대 쇼핑몰, 백화점의 마네킹들도 대부분 두꺼운 패딩과 목도리로 꾸며져 있었다.
한 SPA브랜드 의류 매장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권모 씨는 "집에 있는 트렌치코트도 못 입었는데 아침에 너무 추워서 경량 패딩을 꺼내입었다"면서 "특히 올겨울은 춥다는 예보가 많아서 그런 건지 옷 가게마다 한겨울용 외투(아우터)만 있고 가을은 건너뛴 느낌"이라고 전했다.
7년째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유명수 씨는 "9월에 팔아야 할 얇은 긴팔 등 가을옷이 잘 안 팔렸다"며 "10월 초부터 겨울옷 준비에 돌입한 건 올해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미 자신의 쇼핑몰을 롱 코트, 패딩 등 겨울 시즌에 맞춰 세팅해두었다는 유 씨는 "가을이 짧아지면서 소비자들이 갖고 있던 가을옷으로 버티고 바로 겨울옷을 장만하는 것 같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패션 플랫폼 W컨셉이 이달 16일부터 22일까지의 플랫폼 내 의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겨울 의류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특히 아우터 중에서는 코트의 판매량이 30% 늘었다. 캐시미어 소재의 니트 매출도 162% 증가해 보온성이 좋은 의류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W컨셉 관계자는 "올겨울 한파가 예보되면서 미리 월동 준비를 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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