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베를린 폭격으로 보복했으나, 실제로 몇 배 이상의 앙갚음을 한 것은 2차 대전 말기의 드레스덴 폭격 때다. 1945년 2월 13~15일 2000대 가까운 영·미 연합 폭격기가 바로크 문화의 본산지인 독일 작센주 주도 드레스덴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사망자 집계가 불가능해 추정 사망자가 3만5000명에서 13만5000명 설까지 나올 정도의 참사였다. 흥행 대박을 터뜨린 영화를 가리키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란 용어가 이때 나왔다. 드레스덴에 투하된 폭탄이 도시의 한 구역(block)을 날려버릴(bust) 만큼 위력적이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렇게 적으로 맞붙었던 두 나라가 처음으로 군사협정을 맺었다. 양국 국방장관이 런던의 트리니티 하우스에서 서명해 ‘트리니티 하우스 협정’이란 이름이 붙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에서 국방비 지출 1, 2위 국가답게 양국 간 군사협정 내용은 광범위하다. 공동 정찰 활동에서부터 합동 군사훈련, 장거리 유도 미사일과 드론 등 첨단 무기까지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트리니티 하우스 협정에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다. 이번에 영·독이 군사적으로 손을 잡게 된 것은 러시아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서다. 2차 대전 드레스덴 폭격 때 영국군이 내건 명분은 독일의 저항 능력 봉쇄와 함께 소련군의 진격을 돕는 것이었다. 영국 입장에서 어제의 우방(러시아)은 적이 됐고, 어제의 적(독일)은 오늘의 우방이 된 셈이다.
영·독 관계는 한·일 관계와 닮은 점이 적잖다. 어제의 적 한국과 일본은 지금 북한, 중국, 러시아라는 공동의 적과 위협에 맞서고 있다. 북한의 우크라이나전 파병은 한·미 동맹 강화와 더불어 한 차원 높은 한·일 군사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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