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지난 9월에 발표한 밸류업 지수의 연내 리밸런싱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지수에 포함된 기업은 연내 밸류업 공시를 해야 편입을 유지할 것이고, 미편입 기업이라도 추후 개발될 후속 지수 편입이나 세제 혜택 등 여러 인센티브를 받으려면 밸류업 공시를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야 합니다.”
지난 10월 24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신문사 3층 글로벌강의실에서 열린 ‘ESG 심화 워크숍 - 기업 가치 올리는 밸류업 2.0’에서 김용범 삼일 PwC 밸류업지원센터장이 말했다. 〈한경ESG〉가 주최한 이번 워크숍에서는 밸류업 공시와 관련한 법적 체크리스트부터 공시 목표 및 지표 선정 방법에 이르기까지 밸류업 공시를 준비하는 기업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전달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월 상장사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밸류업 공시) 프로그램을 발표한 바 있다. 기업이 직접 자사 기업가치를 평가하고 가치 제고 목표 및 계획을 세우게 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밸류업 공시, 리스크보다 인센티브에 주목해야"
첫 번째 강사로 나선 오민영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현재 밸류업 공시를 장려하기 위한 여러 인센티브를 소개했다. 불성실공시나 공시 제재, 감사 지정과 관련해 면제해주는 인센티브와 직전 3개년 대비 주주환원 정책을 펼 경우 5% 추가 세제 혜택을 주는 효과 등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밸류업 목표 미달성 및 예측 실패의 경우에도 불성실공시 혹은 불공정거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다만 자율공시지만 제도권 공시로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밸류업 가이드라인상 기업의 현황 진단과 목표 설정 및 계획 수립에 대한 포괄적 공시가 요구되므로 정확성 및 적정성이 담보되어야 할 필요는 있다. 행동주의 주주 및 기관투자자들이 밸류업 프로그램을 계기로 주가 저평가 개선 혹은 주주환원,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한 권고적 주주제안을 확대할 수도 있어 유의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2021년 합리적 배당정책을 수립하지 않은 기업 대상으로 공개서한을 발송하거나 주주 활동을 한 바 있다.
오 변호사는 “공시를 너무 간략하게 하기보다는 충분하게 설명하는 것이 낫다. 현실적 목표를 설정해야 하지만 너무 짧은 공시는 밸류업 공시 취지에도 맞지 않고 소수주주에게 공격받는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적극적인 주주 활동이 강화되는 시점에 시장의 기대와 불일치하는 부분을 적극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두 번째 강사로 나선 신장훈 삼정KPMG 밸류업 지원센터장은 밸류업 공시를 준비할 때 ‘시장이 무엇을 알고 싶은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비전 실현을 위한 본질적 목적을 바탕으로 중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시장의 기대치를 고려한 자기자본비용(COE)의 산출 및 COE와 비교 가능한 자기자본이익률(ROE)을 핵심 지표로 삼는 것을 추천하며, 시장 기대 수익률을 충족하는 세부계획 및 이행 평가를 위한 하위 지표를 식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센터장은 “일본의 많은 기업은 ROE 개선과 자본비용 감소로 기업가치 개선을 설명했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공시한 국내 기업은 그렇게 공시한 사례가 없다. COE 및 ROE가 가장 원하는 지표지만, 적자를 감수하고 성장 중인 기업이거나 비즈니스의 특성이 있다면 이를 충분히 시장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주환원의 경우 기존 선언적 배당정책을 지양하고, 단기적 주주환원과 장기적 ROE 개선 목표의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며 “공시 준비 과정에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이사회 참여가 필수적이며, 임직원의 보상 체계에 연계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세 번째 강사인 김용범 삼일PwC 밸류업지원센터장은 실무적 관점에서 밸류업 공시를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준비 속도를 높일 것을 우선 조언했다. 김 센터장은 “대표이사 최종 보고까지 경영진과의 컨센서스를 올해 안에 만들어야 내년 공시가 가능하다”며 “적어도 내년 5월까지는 밸류업 공시가 나와야 목표하는 지수 편입이라든지 후속 지수 편입, 인센티브 대상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센터장은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가 되고, 역동경제 로드맵이 발표되면서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한 압박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재팬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일본의 밸류업 정책은 IR을 잘 하지 못하는 일본 기업들이 투자자와 IR 소통 수준을 높이고 배당정책뿐 아니라 주주수익률을 올리기 위한 측면에서 고려됐다. 김 센터장은 “지금까지는 국내 기업이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에 대해 언급했지만, 비금융사의 밸류업 공시가 되면서부터는 회사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구체적 플랜이 나올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기업의 구체적 모범 사례도 살폈다. 회사 현황을 구체적으로 진단하고 ROE를 핵심 지표로 한 사례, 업에 맞는 자기만의 핵심 지표를 선정한 사례, 배당 없이 이익을 재투자해 차입 부담을 줄이는 사례 등이다.
밸류업, 지배구조 개선의 일환이기도
네 번째로 김한석 딜로이트 기업지배기구발전센터장은 밸류업 계획을 세우는 데 글로벌 투자자들이 원하는 수준의 거버넌스 구축을 고려해야 함을 강조했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에서 2~3년에 한 번 아시아 12개국의 지배구조 순위를 발표하는데, 한국은 2020년 9위에서 8위로 한 계단 올랐지만 일본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지속 추진 결과 2020년 5위에서 2023년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김 센터장은 일본이 2014년 거버넌스 개혁을 시행하고, 2022년 거래소 개혁 및 2023년 밸류업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기업과 시장 간 상생 계기를 마련한 점을 주목했다. 특히 국내 기업의 거버넌스 주요 개선 과제로 ▲주주권리 강화 ▲자사주 규제 강화(조속한 소각)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주주총회 제도 개선 등을 꼽았다. 실제로 딜로이트에서 기업 거버넌스 개선 사례를 분석한 결과 거버넌스를 개선한 기업의 주가가 우상향하는 상관성을 보였다.
김 센터장은 “밸류업 프로그램상 주주, 이사회, 감사기구 측면의 거버넌스 현황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며 “밸류업 추진 과정에서 이사회의 보고 의결이 의무는 아니지만 해당 역할 수행이 권고되고 있고, 추후 현황 진단 단계에서 피드백 수령을 위한 감사위원회의 역할 또한 강조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거버넌스를 잘 구축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김규식 비스타글로벌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 겸 한국거버넌스포럼 이사는 국내 대표적 밸류업 공시 기업이자 모범 사례로 현대차와 메리츠금융지주에 주목했다. 김 이사는 “밸류업 공시를 통해 현 배당 성향을 30%로 올리고, 2025년부터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합쳐서 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우량하지만 주주환원이 적은 기업인 경우 주가수익비율(PER)을 올리기 위한 배당정책을 발표하면 배당펀드나 연기금펀드의 유입을 이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메리츠금융지주의 경우 금리가 오르면 실적이 좋아지는 메리츠화재와 금리가 오르면 실적이약화되는 메리츠증권을 보유하고 있어 합병 같은 효과를 만들었고, 매년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내년에도 성장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내 저평가를 해소하고 있다고 보았다. 김 이사는 “펀더멘털이 튼튼하면 공격적으로 영업할 수 있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높으면 유상증자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신뢰가 높아져 부도 리스크가 낮아진다는 것을 메리츠금융지주가 여실히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기업 성장전략은 갑자기 만들 수 없고, 5~10년 단위로 장기적으로 만들어야 하며 주주환원 전략도 장기적으로 짜야 한다”며 “최고 주주환원은 지속가능한 성장이다. 성장해서 주주환원을 미래로 이연하는 것, 재투자해 더 큰 성장을 이뤄나가는 것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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