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회로선폭이 미세화되면서 기술력 있는 디자인하우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팹리스가 원하는 고사양 반도체를 파운드리가 정확하게 만들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에이직랜드는 반도체 생태계에서 디자인하우스의 역할이 확대되는 흐름을 활용해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 25일에는 SK하이닉스가 테슬라에 1조 규모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데이터 저장장치) 공급을 논의 중이라는 소식에 주가가 3만850원에서 3만7150원으로 20.4% 폭등하기도 했다. 지난 7월 에이직랜드와 eSSD 컨트롤러 공동 설계·개발 계약을 맺은 파두가 SK하이닉스에 eSSD 컨트롤러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민 에이직랜드 대표는 "기술 고도화를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게 목표"라며 "미국은 전 세계 팹리스 시장의 60~70%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에이직랜드는 국내 유일의 TSMC 협력사(VCA)인 만큼 미국에서도 TSMC 신규 고객사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기술 고도화를 위해 지난 8월 대만 신주시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설립했다. 공식 개소식은 다음 달 5일이다. 현재 현지 직원은 4명에 불과하지만 향후 16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는 3·5나노 선단공정과 2.5차원(2.5D) 패키징 기술을 내재화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대만의 반도체 고급 인력을 채용해 관련 기술을 습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칩렛 기술 내재화 역시 대만 R&D센터 설립의 주요 목적이다. 칩렛은 다양한 기능을 가진 각각의 반도체를 하나로 연결해 고성능 반도체를 만드는 패키징 기술이다. 필요에 따라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등을 결합하면 되기 때문에 인공지능(AI)기업 요구에 따라 신속하게 주문제작이 가능하다.
이 대표는 "향후 10년간은 인공지능(AI)이 주목받을 것"이라며 "칩렛은 AI 시대에 각광받는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26년 상반기 자사 칩렛 기술을 적용한 샘플을 선보일 것"이라며 "우리가 칩렛 기술을 내재화했는지 여부를 이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술 개발 외에 대만 현지 팹리스와의 계약을 위한 영업도 적극 확대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대만 팹리스 시장은 전세계 팹리스 시장 규모의 10% 이상을 차지한다"며 "프론트엔드, 백엔드, 후공정 패키징에 이르는 과정을 턴키로 수주하기 위해 현지 다수 기업과 접촉 중"이라고 했다. 관련 수주 건 매출은 내년 상반기 회계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시스템반도체 투자 건은 지난 7월 국내 팹리스 파두와 맺은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데이터 저장장치) 컨트롤러 공동 설계·개발 계약이다. 이 대표는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미미한 수준"이라며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턴키 수주를 늘리기 위한 설계자산(IP)비즈니스도 확대한다. TSMC 공정을 이용하려는 국내외 팹리스들 사이에서 검증된 IP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지난해에는 IP 설계기업 아크칩스에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아크칩스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65종의 IP를 설계한 업체"라며 "앞으로도 매년 60개 이상의 IP를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R&D와 투자가 성공적으로 성과를 내면 회사가 글로벌 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TSMC의 유일한 한국 VCA라는 건 국내에서나 강조할 수 있는 수식어"라며 "향후 시장을 확대해 2030년에는 연매출 5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목표를 밝혔다.
수원=이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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