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이란의 군사 시설에 대한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지대지 미사일 200여발을 발사한 후 25일 만에 단행된 보복 공습이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에너지 기반 시설과 핵 시설 등 폭격을 단념한 것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를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정부 역시 이스라엘의 보복이 군사시설에 한정될 경우 재보복을 자제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데 따라 전면적인 확전은 피하기 위해 제한된 공격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스라엘 정부와 현지 매체에 따르면 전투기와 드론 등 100대 이상의 군용 항공기가 선발대로 이륙해 시리아와 이라크 영공을 지나며 방공 포대와 레이더를 제거해 진로를 확보했다. 뒤따라온 공습 편대는 1000㎞ 이상을 비행해 이란 국경에 도착, F-35 스텔스기를 앞세워 이란 서부의 대공 레이더와 러시아제 S-300방공 미사일 등을 폭격했다. 이어 공중급유를 받은 F-15 등 대형 전폭기들이 수도 테헤란 주변까지 진입해 파르친 군사 기지와 무인기 제조 공장, 미사일 연료 공장 등에 폭탄을 투하했다.
이란군 총참모부는 이날 저녁 발표한 성명에서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미사일의 탄두가 매우 가벼웠고 피해도 이란 국경지대의 레이더 시스템 일부에 제한됐다”며 “상당수 미사일이 격추됐고 적기의 이란 영공 진입은 차단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성 사진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이란의 미사일 연료 제조용 중국산 원심혼합기 등이 상당수 파괴돼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정했다. 파괴된 방공 미사일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탓에 조기에 재도입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란 정부도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한 의미를 축소했다. 이란 외무부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지적하며 “국제법과 유엔 헌장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으나 “침략 행위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위협하는 데 그쳤다. 최근 수개월 간 언급했던 ‘복수의 불길’, ‘피의 대가’와 같은 강경한 표현은 나오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들(이스라엘)이 군사 목표물들 말고는 다른 곳은 타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것이 끝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확전 여부는 미국의 차기 정부에 달려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다음 달 5일 치러지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한다면 이란을 추가 타격할 기회가 생길 것이란 계산으로 예행연습을 했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얼마전 "이란이 나를 암살하려고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란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일단 시간을 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소모전을 벌이고 있어 두고봐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프로그램 책임자 사남 바킬은 "이란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갈등 확대를 피하려면 피해를 감수하고 외교에 초점을 맞춘 장기 전략적 해법에 집중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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