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무대로 종종 한국을 찾았지만 전막 공연으로 서는 건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로서는 처음이에요. 고향과 같은 국립발레단에서 공연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발레리나 박세은(35)은 올림픽으로 치면 금메달리스트다. 이력서에 더 좋은 것을 써넣을 수 없는 최정상의 위치.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 중 동양인은 그뿐이며, 여전히 그 수식어가 유효하다. 한국 국립발레단에 잠시 몸담은 박세은은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준단원으로 입단해 군무부터 5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 3년 전 에투알이 됐다. 파리에서 그는 오데뜨 공주(백조의 호수), 지젤(지젤), 키트리(돈키호테), 마농(마농), 니키아(라 바야데르) 등 다양한 주역으로 빛났다.
“지금까지 한 안무 버전과 다른 ‘라 바야데르’를 익히고 있어요.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기존 볼쇼이 발레단 안무를 국립발레단을 위해 수정했어요. 무대 위 동선과 편곡된 음악의 차이 덕분에 새롭고 설레는 기분이에요. 강수진 단장님의 코칭도 받고 단원들과 의견을 활발히 나눕니다.”
‘라 바야데르’ 작곡가 루트비히 민쿠스의 웅장하고 미려한 음악은 무용수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박세은도 인터뷰 도중 ‘라 바야데르’ 음악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더니 오른팔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음악을 생각하면 무언가 몸에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며 “작곡가의 악상을 상상하고 수많은 동작을 머릿속에 그린다”고 했다.
박세은에게 니키아는 어려운 캐릭터였다. 니키아는 신을 섬기는 무희지만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영적인 기운을 가진 인물이기도 해서 박세은이 니키아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니키아는 미천한 신분임에도 사랑을 위해 공주 감자티와 대적하는 강인함을 갖췄어요. 그런 모습을 좀 더 드러내 보이고 싶어요.”
두 번째는 출산. 박세은은 임신 3개월까지 무대에 섰고 출산 뒤 6개월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임신과 출산으로) 팽팽했던 근육과 관절이 느슨해지고 골반이 커졌어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겪어보고 나니 춤을 좀 더 집중력 있게 추게 됐어요. 엉망이 된 몸을 다시 세우고 내가 모르던 나의 동작을 발견하면서 흥미롭기도 했고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통째로 바꿔야 했던 두 번의 경험을 통해 그의 춤은 깊어지고 즐거워졌다. “많은 동료가 물어요. 왜 출산 후에 제 춤이 더 편안해 보이는지를요. 오늘 연습하다 그 답을 찾았어요. 제가 ‘(신체적으로) 바닥까지 가봤는데, 뭐 어때. 더 해보자, 더 즐기자’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날 박세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발레라는 게 워낙 어렸을 때부터 프로 무대에 서도록 훈련받기에 제가 젊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오늘 다양한 예술 분야 수상자와 만나 ‘나는 아직 젊구나, 할 일이 더 많겠다’는 긍정적 에너지를 받고 왔어요.” 발레의 의미에 관한 질문에 대답이 매번 바뀐다는 박세은. 종래엔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을까. “예전에는 오늘 더 연습해서 내일 더 잘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고, 항상 미래를 봤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요. 최선의 노력으로 얻은 경험을 발레를 통해 나누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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