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악몽의 쿠르스크

입력 2024-10-27 17:41   수정 2024-10-28 00:17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러시아 쿠르스크는 ‘모스크바의 목줄’로 불린다. 유럽에서 모스크바로 가려면 그 턱밑에 있는 이곳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대평원이 펼쳐진 이곳은 유럽과 러시아, 크림반도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작은 공국이던 쿠르스크는 주변국 틈바구니에 있는 이런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예부터 숱한 고초를 겪었다.

12세기에는 폴란드의 침공을 받았고, 13세기엔 몽골이 쳐들어왔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16세기 모스크바 대공국이 이곳을 점령했지만, 크림칸국, 리투아니아 등의 공격으로 바람 잘 날 없었다. 러시아의 지배가 공고화한 것은 18세기 말. 모스크바 침공에 나선 나폴레옹의 말발굽 아래 놓이기도 했다. ‘저주를 받은 땅’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차 대전 땐 독일과 소련이 이곳에서 명운을 건 전투를 벌였다. 독일 히틀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1943년 7월 쿠르스크를 공격했다. 병력 80만 명, 전차 3000여 대, 항공기 2100여 대를 동원했다. 소련은 병력 190만 명, 전차 5000여 대, 항공기 2700여 대로 맞섰다. 단일 전투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평원마다 병사 수만 명과 전차 수백 대가 뒤엉켜 싸워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만들어냈다. 독일이 패배하면서 2차 대전 전황이 바뀌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독일군 사상자, 포로가 50여만 명에 달했다. 소련이 승리했다고 하나 물량 공세 덕이었을 뿐 피해는 독일보다 더 컸다. 60여만 명이 사상당하거나 포로가 됐다. 히틀러의 뒤틀린 욕망이 수십만 병사를 죽음으로 몰았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수천 명이 쿠르스크에 도착해 전투에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8월 쿠르스크 일부를 점령해 러시아와 교전 중이다. 이곳은 숨을 곳이 마땅치 않은 개활지가 많아 북한군이 많은 희생자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김정은이 파병 대가로 핵·미사일 등 첨단무기 기술을 받아 우리 안위를 위협하고, 자신의 주머니에 달러를 채워넣기 위해 앳된 군인들을 총알받이로 사지에 보내고 있다. 이래도 그가 계몽군주인가.

홍영식 한국경제매거진 전문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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