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문제 출제 오류에도 쉬쉬…'답없는' 학교에 학생만 속앓이

입력 2024-10-27 17:50   수정 2024-10-28 00:35

“지난 2년 동안 학교에서 출제 오류가 서너 번 있었지만 정답이 수정되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27일 교육 관계자에 따르면 경기 안성시에 있는 경기창조고의 이번 학기 2학년 중간고사 국어(독서) 시험에서 출제 오류가 발생했다. 비문학 지문에서 ‘주어진 정보만으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더라도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해 알아볼 수 있다면 이 역시 법적 보호 대상으로서의 개인정보에 포함된다’고 주어졌지만, 윗글의 내용과 일치하는 선다를 고르는 문제의 답이 ‘① 주어진 정보만으로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다면, 개인정보에 포함되지 않는다’였다. 해당 교과 교사 3명과 수학 교과 교사 1명이 의논했지만 출제 오류가 없다고 판단해 별도의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이 학교에서 출제 오류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1학기 2학년 국어(언어와 매체) 시험에서 ‘안 쓰는 플러그는 뽑아 주세요’라는 명령형 문장을 청유형 문장이라고 한 출제 오류가 있었고, 지난해 2학기 2학년 국어(독서) 시험에서는 ‘따뜻한 봄볕을 등에 지고’를 공감각이라고 출제해 문제가 있었다. 이 학교 3학년 학생은 “반복되는 출제 오류에도 이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불만이 많다”고 했다.

내신 출제 오류는 중·고교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공립 일반고인 전주제일고에선 2022년 1학년 2학기 기말 화학 시험에서 정답이 없는 두 문제가 출제돼 모두 무효로 처리했다. 김해의 한 공립고는 같은 해 2학년 2학기 수학 시험에서 한 문제를 잘못 출제해 재시험을 치렀다.

더 큰 문제는 중·고교 내신 출제 오류가 있더라도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 고등학생은 “수행평가 점수를 매기고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교사들에게 직접 이의 제기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본래 내신 시험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학교 측은 정답 정정, 채점 기준 변경, 부분 점수 인정, 성적 정정, 재시험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해당 교과 교사와 교무부장이 들어가는 교과협의회, 교장 주관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거쳐 진행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교사들이 출제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면 다른 수가 없다. 교육청이나 교육부에 직접 출제 오류를 신고할 수 있는 별도의 절차도 없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학교의 내신 시험과 성적 관리를 검토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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