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29일 12:0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30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책을 논의한다. 이 자리에서 고려아연은 자사주 약 1.4%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겨 의결권을 되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의결권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사주조합에 무상으로 지분을 넘기거나 시세보다 싼 가격에 넘기는 것이다. MBK파트너스 측은 업무상 배임이라면서 강력 경고하고 있다.
2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30일 오전 9시 이사회를 긴급 소집했다. 이사들에게는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안건이라고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 안건 소집 시에는 안건을 제시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구체적인 의안을 특정하지 않았다.
업계에선 최 회장 측이 이날 이사회에서 신탁계약을 통해 보유 중인 자사주를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하는 내용을 의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5월 자기주식 취득 신탁 계약을 맺고 자사주 28만9703주(약 1.4%)를 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해당 주식의 신탁 기간은 다음달 8일 종료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이 주식을 우리사주조합에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지분율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최 회장은 이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겨 의결권 지분을 확대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를 이사회가 통과하면 최회장의 의결권 지분은 우군으로 알려진 지분을 포함 기존 34.05%에 베인캐피탈이 공개매수를 통해 인수한 1.41%, 이번 우리사주에 넘길 자사주 1.4%를 더해 36.86%까지 늘게 된다. MBK와 영풍 측이 이미 확보한 38.4% 대비 약 1.5%포인트까지 좁혀지게 된다.
다만 이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기는 과정에서 회사가 자금을 지원하거나,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넘길 경우 배임 우려가 있다. 고려아연 자사주 1.4%는 시가 기준 약 3700억원에 달한다. 우리사주조합이 당장 이를 사들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최 회장 측은 이를 시가보다 싸게 넘기거나 우리사주조합이 이를 살 수 있도록 재무적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배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다. 대법원도 2004년 신한종금 사례에서 '주주 간 지분경쟁 상황에서 일부 경영진의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목적 하에 종업원지주제를 활용하는 행위는 업무상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최 회장 측이 이날 이사회에서 MBK 연합이 요청한 임시 주주총회 소집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MBK 연합은 전날 고려아연 이사회를 상대로 신규 이사 선임의 건과 집행임원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의 건을 결의하기 위한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임시 주총에서 표 대결을 벌여 MBK 연합이 제시한 14명의 신규 이사가 선임되면 MBK 연합은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하고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다. 그간 업계에선 최 회장 측이 임시 주총 개최를 최대한 미루며 추가적인 우군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MBK 연합이 향후 장내매수로 지분을 사들이면 과반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최 회장 측이 오히려 임시 주총을 빨리 열고 표 대결에 나서는 방안을 택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표대결을 벌일 경우 기관투자가와 국민연금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국민연금은 위탁 지분을 대부분 매각하고 4% 안팎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나머지는 약 9%는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이 손을 들어주는 쪽이 유리하긴 하지만 완전히 승기를 쥐는 구조는 아니다. 양측 모두 기관투자가 설득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배경이다. MBK 연합은 최 회장의 사법 리스크 등을 부각시키며 향후 고려아연의 성장성 측면에서 MBK 연합이 경영하는 게 더 낫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우리사주에 넘기면 캐스팅보트가 될 나머지 기관투자가들의 표심도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 이사회가 자사주 취득 당시 결의한 ‘주식 소각 및 임직원 평가보상’라는 목적과 다를 뿐 아니라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겠다고 약속한 점과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실제 고려아연 소액주주연대 등은 고려아연의 높은 주주환원율을 바탕으로 기존 경영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구체적 전략 등에 대해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차준호 / 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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