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30일 13:1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이 이사회를 열어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하는 기습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시가대비 30% 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해 우군이 될 우리사주조합에 20% 물량을 우선 넘겨 우군을 늘리겠다는 행보다.
고려아연은 기존 채무 상환을 증자 목적으로 내걸었지만 대부분의 채무가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단행한 주당 89만원 공개매수 과정에서 급증했다는 점에서 논란에 설 전망이다. 캐스팅보트가 될 국민연금은 물론 우군인 베인캐피탈의 수익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전망이다.
30일 고려아연은 이사회를 거쳐 신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해 총 2조5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달 22∼24일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에 따라 기준 주가 95만 6116원에서 30% 할인율이 적용됐다. 내달 29일 모집가액이 확정될때까지 고려아연의 주가가 더 하락하면 유상증자 가격도 67만원보다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공시 직후 고려아연의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고려아연은 신주 물량 중 약 20%인 74만6530주를 우리사주조합에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 80%를 일반공모방식으로 주주들에게 배정할 계획이다. 우리사주에서 배정 물량을 전량 청약하면 의결권 기준율은 3.4%가 된다. 신주 납입일은 오는 12월 6일, 신주 상장일은 같은 달 18일이다. 주관은 미래에셋증권이 맡았다.
최 회장 측이 기습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은 경영권 분쟁 중인 MBK·영풍 연합의결권 지분율을 희석시키고 우리사주를 통해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번 증자로 MBK와 영풍 연합의 의결권 지분율은 기존 43.9%에서 36.4%까지 희석된다. 최 회장과 우호 백기사 베인캐피탈의 합산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기존 40.4%에서 33.5%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신주를 확보한 우리사주물량 3.4%가 최 회장 편을 들면 의결권 지분율은 36.9%까지 늘게된다. MBK 연합을 0.5%포인트(p) 앞서게 되는 것이다.
다만 유상증자의 목적과 배경이 최 회장의 경영권 사수에서 촉발된 점이 나머지 주주들의 이탈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고려아연 측은 주당 89만원에 자사주 공개매수를 단행하면서 이달 23일까지 약 2조750억원을 외부에서 조달했다. 이 채무 상환을 목적으로 단 7일만에 대폭 낮은 가격인 주당 67만원에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나머지 주주들에 피해를 줬다는 비판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MBK 측이 또 한번의 공개매수를 통해 최 회장 측의 기습 유상증자에 실망한 주주들의 지분을 끌어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의결권 기준 약 3~4%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도 공개매수에 대한 의사결정을 미루다 수익 실현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우리사주에 저가로 물량을 배정하면서 단기적으로 승기를 잡았지만 나머지 주주들에 대한 민심을 잃었다는 게 더욱 큰 패착일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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