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공개매수 끝나자마자 '폭탄 증자'...묘수인가 자충수인가

입력 2024-10-30 16:15   수정 2024-10-30 17:25

이 기사는 10월 30일 16:1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30일 11시20분께 한건의 기습 공시에 고려아연의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고려아연이 이날 이사회를 열어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신주 발행을 결의하면서다. 시장의 시선은 주당 67만원이라는 유증 가격에 집중됐다. 이날 시초가인 148만6000원 대비 54.9% 낮고, 지난 23일 마무리한 공개매수 가격 89만원 대비 24.7% 낮은 가격이다. MBK파트너스·영풍 연합도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가 끝나자마자 초대형 유상증자를 발표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증자 방식은 일반 공모 방식이다. 신주 20%를 우리사주조합에 먼저 넘겨 우호 의결권을 늘리겠다는 행보도 공식화했다. 이를 실행하면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MBK 영풍 연합을 역전하게 된다.

고려아연이 던진 '폭탄 증자'에 자본시장은 들끓었다. 고려아연은 증자 목적으로 재무구조 개선을 내걸었지만 이 차입금은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진행한 주당 89만원의 공개매수 과정에서 급증했다. 공개매수가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법원과 주주들에게 밝힌지 7일만에 증자를 단행하자 '시장 교란' 논란이 일고 있다. 캐스팅보트가 될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타 주주들도 막대한 손실 위험에 직면했다. 금융감독원도 상황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폭탄 유상증자 꺼낸 최윤범 측
30일 고려아연은 이사회를 거쳐 신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해 2조5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공시했다. 67만원은 이달 22∼24일의 거래량과 거래대금에 따른 기준 주가 95만 6116원에서 30% 할인율이 적용한 잠정 가격이다. 주가가 최근 과열된 점을 고려할 때 내달 29일 모집가액이 확정될 때까지 주가가 하락하면 신주 가격도 67만원보다 대폭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고려아연은 신주 물량 중 약 20%인 74만6530주를 우리사주조합에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 80%를 일반공모방식으로 주주들에게 배정할 계획이다. 우리사주에서 배정 물량을 전량 청약하면 의결권 기준율은 3.4%가 된다.

최 회장 측이 기습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은 경영권 분쟁 중인 MBK·영풍 연합의 의결권 지분율을 희석시키고 우리사주를 통해 우군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이번 증자로 MBK와 영풍 연합의 의결권 지분율은 기존 43.9%에서 36.4%까지 희석된다. 최 회장과 우호 백기사 베인캐피탈의 합산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기존 40.4%에서 33.5%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신주를 확보한 우리사주물량 3.4%가 최 회장 편을 들면 의결권 지분율은 36.9%까지 늘게된다. MBK 연합을 0.5%포인트 앞서게 되는 것이다.

고려아연 측은 유상증자 청약 한도를 특수관계자를 포함한 1인당 11만주로 제한해 MBK와 영풍 측이 유증에 참여하는 방안도 차단했다. 단일 주주 입장에선 아무리 많은 자금을 보유하더라도 이번 유상증자에선 전체지분율 기준 0.5%를 얻는데 그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외견상 일반 유상증자를 택하면서 모든 주주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줬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참여에 제한을 둬 경영권 방어에 활용한 것"이라며 "특히 특수관계자까지 포함시킨 사례는 전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말바꾸기에 지친 주주들...법원 판단도 변수
최 회장 입장에선 경영권 분쟁 열세를 뒤집을 '묘수'를 꺼내든 셈이지만 일반 주주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분노하고 있다. 자칫 '시장 교란' 논란으로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려아연 측은 주당 89만원에 자사주 공개매수를 단행하면서 이달 23일까지 약 2조750억원을 외부에서 조달했다. 앞서 주당 83만원에 공개매수를 마친 MBK 연합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대항 공개매수였다. 이때 일으킨 채무 상환을 목적으로 단 7일만에 대폭 낮은 가격으로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최대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나머지 주주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비판에 설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 측은 앞서 자사주 공개매수의 적법성을 다룬 2차 가처분 재판에서도 재판부에 공개매수 이후에도 건전한 재무여력을 유지할 것이라 주장해 가처분 승소를 이끌어 냈다. 법원의 판단과 배치된 행보도 논란에 설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이 유상증자를 준비한 시점도 논란이다. 최 회장 측이 공개매수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4일부터 미래에셋증권에 유상증자 준비를 위한 실사를 맡겼다. 자신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대규모 차입금을 일으켜 공개매수를 할 때부터 다른 주주들의 희생이 뒤따르는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할 계획을 세웠다는 얘기다.

실사를 시작한 시점은 2차 가처분 재판 전이기도 하다. 최 회장 측은 앞서 2차 가처분 재판에서 "주주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 카드를 꺼냈다"고 말했다. 자사주 공개매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주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큰 유상증자를 준비하면서도 재판부엔 이를 숨기고 주주 전체의 이익 보호를 강조한 것이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가 주주들의 반발과 금융감독원 등 당국의 개입으로 번진다면 최 회장 측 우군의 이탈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자동차(5.0%) 한화(7.75%) LG화학(1.89%), 한국투자증권(0.77%), 한국타이어(0.75%) 등 최 회장 측 우군으로 분류되는 곳들의 지분도 이번 유상증자로 대거 희석되고, 가치도 급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려아연의 기타비상임이사인 현대차 관계자는 이날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는 등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의결권 기준 약 3~4%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도 공개매수에 대한 의사결정을 미루다 수익 실현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에 설 것으로 전망된다.

MBK 측은 즉각 유상증자 결정을 막기 위한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과 주주들의 불만을 결집하는 절차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법원은 2003년 KCC와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간 경영권 분쟁 사례에서도 경영권 방어 목적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는 위법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MBK가 추가 공개매수를 통해 최 회장 측 유상증자에 실망한 주주들의 지분을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차준호 / 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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