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신세계그룹 인사권을 행사하는 이명희 총괄회장은 딸인 정 총괄사장에게 부회장이 아니라 ㈜신세계 회장직을 맡겼다. 백화점 부문에서 10여 년간 성과를 낸 경영 능력을 인정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세계는 신세계그룹 백화점 부문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을 운영하면서 면세점을 하는 신세계DF(면세), 신세계인터내셔날(패션), 신세계까사(가구·인테리어), 신세계라이브쇼핑(T커머스)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정 회장은 현재 ㈜신세계 지분 18.5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향후 이 총괄회장이 보유한 ㈜신세계 지분 10%를 넘겨받으면 지분율은 28.56%까지 높아진다.
정 회장의 ‘파격 승진’은 그동안의 경영 성과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2015년 말 총괄사장에 오른 뒤 본격적으로 신세계백화점의 ‘지역 1번지 전략’을 주도했다. 백화점 점포가 13곳으로 경쟁사인 롯데백화점(31개), 현대백화점(16개)보다 적지만 압도적 규모의 지역별 점포와 명품 브랜드 유치로 경쟁력을 키웠다. 이 전략은 적중했다. 신세계 강남점은 2017년 롯데백화점 본점을 제치고 국내 매출 1위 백화점으로 도약했다. 작년엔 국내 백화점 중 처음으로 연간 거래액 3조원을 돌파했다. 거래액 3조원은 일본 도쿄 이세탄백화점, 영국 런던 해러즈백화점 등 세계적인 백화점만 달성한 성과다.
세계 최대 규모 백화점인 부산 센텀시티점도 지역 백화점으로는 처음으로 거래액 2조원을 넘겼다. 2021년 문을 연 대전점 역시 이 지역 ‘터줏대감’ 갤러리아 타임월드를 제치고 중부권 최대 백화점으로 올라섰다. 각 지역에서 경쟁사를 압도하면서 2016년 약 2조9000억원에 불과하던 ㈜신세계 매출은 지난해 6조3000억원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신세계백화점 곳곳에 미술작품이 많은 것도 정 회장의 경영 방침과 관련이 있다. 백화점을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니라 문화·예술 공간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품성과 경영 스타일에서 어머니를 꼭 빼닮았다”며 “좀처럼 공식 석상에 나서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략적 치밀함도 경영자인 모친에게 배운 덕목”이라고 평가했다.
신세계그룹은 당초 2020년 무렵 계열분리를 공식화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와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의 급성장으로 본업인 오프라인 유통업의 실적이 악화되자 발표를 미뤄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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