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의 ‘무제움스크바르티어’(Museums Quartier·박물관 집합단지) 중심부에 자리 잡은 레오폴트미술관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00년을 전후해 생겨난 ‘빈 모더니즘’ 미술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교차점이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은 낡은 전통에 맞서 도전과 실험에 나선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등 ‘빈 분리파’ 거장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개관한 지 20년 조금 넘은 젊은 미술관이지만,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빈미술사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술관으로 꼽히는 이유다.
레오폴트미술관은 ‘위대한 수집가’ 루돌프 레오폴트(1925~2019)가 반려자인 엘리자베스 레오폴트(1926~2024)와 함께 평생에 걸쳐 수집한 소장품 5200여 점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수많은 유명한 ‘큰 손’ 수집가 사이에서도 레오폴트는 특별하다. 단순히 부를 축적하거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값진 작품을 수집한 게 아니라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미술사 한 페이지의 파편들을 모았기 때문이다.
1925년 빈에서 태어난 루돌프 레오폴트는 안과의사로 활동했다. 의대생이던 1947년부터 미술품을 수집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였던 당시 그가 눈여겨본 건 무명의 화가 실레였다. 1890년에 태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멸망한 1918년 생을 마감한 실레가 종말 속에서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긴 전쟁으로 유럽이 힘을 잃어가는 시기에 청춘을 맞은 루돌프 레오폴트는 실레의 파격적인 그림에 필연적으로 이끌릴 수 밖에 없었다.
실레는 1960년대까지 적나라한 누드 드로잉이나 그렸던 외설적인 화가란 이유로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루돌프 레오폴트는 이런 실레의 희미한 흔적을 끈질기게 쫓았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들고 작품 소유자를 찾아다니며 그림을 팔아달라 졸랐는데, 생전에도 주목받지 못한 화가였던 탓에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다. 42점의 그림과 원본 그래픽, 소묘, 판화 등 220여 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에곤 실레 컬렉션’을 보유하게 된 배경이다.
루돌프 레오폴트는 1955년 오스트리아 모더니즘 전시에 실레의 작품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런던, 뉴욕, 뮌헨, 도쿄, 함부르크 등에서 컬렉션을 소개하며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실레 외에도 클림트와 오스카 코코슈카, 리하르트 게르스틀 등 1900년 세기 전환기 빈에서 활동한 숨은 표현주의 거장들의 작품까지 한데 모으며 빈 모더니즘의 파격적 실험들이 조명받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개인 수집가의 컬렉션이 모두가 향유하는 국립미술관의 소장품이 된 건 70대에 접어든 루돌프 레오폴트가 1994년 미술관재단을 설립하면서다. 루돌프 레오폴트는 당시 5억7000만 유로(약 8540억원)가 넘는 것으로 평가됐던 자신의 컬렉션을 정부가 시세의 3분의 1 수준에 매입하는 조건으로 협상했다. 그가 원한 건 자신의 이름이 붙은 미술관을 세우고 종신 관장직을 맡는 것. 수 천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갖고도 빈 교외의 소박한 집에서 수십 년을 살았던 평소 모습과 어울리는 조건이었다.
2001년 개관한 레오폴드미술관은 하얀 석회암으로 외관이 덮인 정육면체 모양의 모던한 건물이 특징이다. 전 세계 미술애호가들이 미술관 앞 너른 광장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실레와 클림트의 그림을 보기 위해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모습은 매일 반복되는 풍경이다. 다만 당분간은 관람객의 표정에 적잖은 아쉬움이 나타날 전망이다. 클림트의 ‘수풀 속 여인’, 실레의 ‘작은 마을’ 등의 걸작들이 오는 11월 30일부터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느라 자리를 비우기 때문이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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