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녹취가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이 전당대회를 비롯한 당무에 개입하는 것이 헌법과 선거법상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7조 2항에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또 공직선거법 9조 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나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날 민주당이 공개한 윤 대통령과 명 씨의 통화록에는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건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하는 윤 대통령의 음성이 담겼다. 이에 명씨는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다. 고맙다"고 반응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2월 취임 1주년을 맞아 방송기자클럽에서 주최한 특별회견에서 17대 총선에 대한 질문을 받고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를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해 '선거 중립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야당은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선거 중립 위반'이라며 탄핵 소추에 나섰고, 결국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받게 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에서의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면서도 탄핵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탄핵소추안을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가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파면 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민주당이 이번에 공개된 녹취가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명확하게 '그렇다'고 답을 못하는 것은 이러한 과거 사례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의 녹취록을 직접 공개한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녹취 내용이 대통령 탄핵 사유가 된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아마 국민이 판단하실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을 아꼈다. 노종면 원내대변인도 "언론이 판단하실 문제"라고 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공천 개입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녹취 내용대로라면 윤 대통령이 2022년 6·1 국회의원 보궐선거 공천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것인데, 대통령실은 "당시 윤 당선인과 명태균 씨가 통화한 내용은 특별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었고, 명 씨가 김영선 후보 공천을 계속 이야기하니까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뿐"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또 언론 공지를 통해 "당시 윤석열 당선인은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공천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또 공천을 지시한 적도 없다"며 "당시 공천 결정권자는 이준석 당 대표, 윤상현 공천관리위원장이었다"고 밝혔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이 통화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중진의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된 이후에 직무상 직무를 하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중대한 행위가 있을 경우가 탄핵 사유"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당의 1호 당원인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 입장에선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걸로 무슨 선거 개입이니, 공직선거법상 선거 관여죄니, 선거 개입죄니 이렇게 주장하는 건 너무 나간 주장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권 의원은 일각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천 개입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을 언급하는 데 대해선 "그 사건은 당시 청와대에서 총선 관련 여론조사를 하고, 그 여론조사 내용을 당에 전달하고, 또 친박(친박근혜) 정치인들을 특정 지역에 배치하기 위해 경선 리스트까지 보냈던 행위"라며 "결론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개입 행위와는 그 내용이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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