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석 칼럼] 지역화폐, 만병통치약 아니다

입력 2024-10-31 18:00   수정 2024-11-01 09:05

더불어민주당의 지역화폐 사랑은 유별나다. 틈만 나면 약방의 감초처럼 지역화폐를 꺼내 든다. 지역화폐는 광역시·도와 시·군·구가 발행하는 지역 상품권이다. 발행 지역에서만 쓸 수 있다. 민주당이 13조원의 예산을 들여 국민 1인당 25만원씩 나눠주자고 할 때 지급 수단이 바로 지역화폐다. 지난 9월엔 지역화폐 발행에 드는 재정 부담을 국가가 지도록 한 지역화폐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지방자치단체는 통상 액면가보다 5~10% 싸게 지역화폐를 발행하는데 할인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정부가 예산으로 보조금을 줄 순 있지만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이를 국비 지원으로 의무화하자는 게 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이다.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무시한,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법안이다. 결국 대통령 거부권에 막혔다.

민주당은 내년 예산안 심사를 앞둔 요즘 정부 예산 2조원을 들여 지역화폐 10조원어치를 발행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지역화폐 할인 비용 20%를 국비로 지원하라는 요구다. 이재명 대표는 지역화폐 사용 금액에 대한 소득공제율을 30%에서 80%로 올리고 최대 100만원까지 공제하자는 조세특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지역화폐를 미는 명분은 민생 살리기다. 내수 진작을 위해선 지역화폐로 소비를 끌어내야 한다는 논리다. 지역화폐는 온라인 쇼핑몰이나 백화점, 대형마트 등에선 쓸 수 없어 골목상권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민주당이 내세우는 이유다.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해답이 꼭 지역화폐일 필요는 없다.

지역화폐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 무엇보다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길 수 있다. 지자체가 발행 주체이다 보니 재정이 넉넉한 지자체가 더 많이 발행할 수 있고 결국 부유한 지자체 주민이 더 이득을 볼 수 있다. 지자체 간 ‘제로섬 게임’도 생길 수 있다. 특정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그 지역 골목상권은 매출이 늘 수 있지만 인근 지자체 자영업자 매출은 줄어들 수 있다.

이런 단점을 없앤 게 온누리상품권이다. 온누리상품권은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행한다. 액면가 대비 5~10% 할인돼 지역화폐와 비슷한 소비 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통시장과 관련 상점가에서만 쓸 수 있어 골목상권 보호 효과도 높다. 지역화폐와 달리 전국적으로 쓸 수 있어 지자체 간 격차와 제로섬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발행 주체가 정부로 단일화돼 지자체들이 중구난방식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할 때보다 운영비도 줄어든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지역화폐보다 온누리상품권이 낫다고 평가했다. 정부 재정 지원도 온누리상품권으로 일원화하라고 권고했다.

현 정부는 출범 후 국회에 낸 예산안에서 지역화폐 보조금을 전액 삭감하는 대신 온누리상품권 예산을 늘렸다. 예컨대 내년 예산안에선 온누리상품권 국비 보조액을 올해 3510억원에서 3900억원으로 높여 잡았다. 이를 통해 온누리상품권 발행액을 올해 5조원에서 내년에 5조5000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물론 온누리상품권도 과도하게 늘리면 지역화폐처럼 현금 살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무분별한 증액은 삼가야 하지만, 민주당이 내수 진작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다면 굳이 지역화폐만 고집할 게 아니라 온누리상품권을 더 늘리자고 하면 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예산안 심사 때마다 지역화폐 늘리기에 사활을 건다. 국회의 예산 삭감권을 무기로 정부에 증액을 요구해왔다. 이재명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지역화폐) 구하기라는 정치적 목적을 빼고는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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