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갈등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나라는 중국이지만, 그 다음 타격을 받을 아시아 국가는 한국입니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사진)은 지난달 2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중국과 교역량이 많은 한국은 무역 분열로 인해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연 2%대로 떨어지고 있다면서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성장세가 둔화되는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해외이민 확대 등으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정석'을 강조했다. 또 한국 정부부채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해서는 낮은 편이지만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는 만큼 부채 비중을 6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대선이 끝나면 미중갈등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미중 간의 통상 갈등이 시작된 후에도 아시아 국가의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은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결과이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국가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역 분열(trade fragmentation)로 인해 세계 산출량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길게 보면 무역 갈등은 전 세계에 손실을 줍니다. 일부 지역과 국가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클 것입니다."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을 국가는 어디라고 보십니까.
"중국이 가장 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한국입니다. 중국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국의 3분기 경제 수치에서도 이런 영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한국의 3분기 수출 실적을 보면 기술제품 수출이 둔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차이가 있었는데, 고사양 반도체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저사양 반도체는 그렇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고사양 반도체 수출을 늘려서 이런 기술제품 수출이 둔화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도 차이가 있었는데, 고사양 반도체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저사양 반도체는 그렇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상황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이는 무역 갈등 상황이 빚어낸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최근 세계은행의 인테르밋 길 수석경제학자가 한국은 중진국의 함정을 성공적으로 피해 성장을 이뤄냈다며 '슈퍼스타'와 같다고 칭찬했는데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러나 지금부터 성장이 둔화할 것이라는 '피크 코리아'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거시경제적으로 보면 한국의 상황은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히 더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성장률도 좋고 물가상승률은 둔화되고 있으며 공공부채 수준도 합리적인 범위 내에 있습니다. 작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였고 올 상반기는 2.7%였습니다. 기술부문 수출이 늘어났기 떄문인데요. IMF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2.5%로 상향 조정한 배경입니다.
그러나 3분기 한국경제는 다소 약세로 돌아섰습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더 낮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내년 한국의 성장률은 2.2%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의 잠재 성장률과 거의 같은 수준입니다."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할까요.
"한국이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성장률이 2%로 둔화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를 개선하려면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하죠."
▶어떤 조치를 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을 통해 생산성을 개선해야죠. 그러면 잠재 경제 성장률도 높일 수 있습니다."
▶한국의 또 다른 문제는 고령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이 연금개혁을 진행하면서 여성을 포함한 전 국민의 노동 참여를 장려해야 한다고 조언하겠습니다. 그게 바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다지 환영받는 방법은 아니겠지만, 외국 인력을 수혈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정치적인 논란이 있을 텐데요.
"그렇죠. 사실 어느 국가에서든 이민자를 늘리는 해결책은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경제학자로서 가능한 방법을 얘기할 뿐입니다. 국가 지도자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한국의 공공부채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에 문제가 없는데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조금 더 넓은 맥락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아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꾸준히 공공부채 비중이 커지고 있는 지역입니다. 2007년과 현재의 부채 수준을 비교해 보면 이 지역의 부채가 큰 폭으로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일본의 부채비율은 250%를 넘어섰고 중국도 두 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한국의 GDP 대비 공공부채 비중은 52%에 불과하기 때문에 높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공공부채를 우려하는 이유는 뭡니까.
"한국이 직면한 몇 가지 문제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한국의 인구는 급속도로 고령화되고 있고, 생산성이 감소한다는 문제가 있으며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로 인한 장기적인 비용과 재정적인 압박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가 재정적으로 보다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채의 절대적인 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다가올 장기적인 재정 압박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의 공공부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GDP의 60% 이하로 유지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부채 규모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현대통화이론(MMT) 지지자들과 의견이 다르시겠네요.
"지출하는 것은 아주 쉽지만,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마구잡이로 예산을 집행해서는 안 됩니다. 재정적으로 방탕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장기적인 재정 압박을 감안해서 건전재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국 가계의 부채 대 소득 비중은 10년 전 155%에서 2022년 200% 이상으로 올라왔습니다. 올초 한국에 가계부채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부채비중을 낮추도록 조언하실 건가요.
"분명히 한국의 가계부채 비중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입니다. 중요한 건 이런 부채가 건전한 금융자산으로 뒷받침이 되느냐인데, 한국은 대부분 금융자산이 뒷받침되어 있고요. 또 돈을 빌린 이들의 소득 수준도 좋은 편입니다. 충분한 신용이 있는 사람들이 주택 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얘깁니다. 이는 대차대조표 위험을 낮춰주는 요인입니다. 가계부채의 양을 점진적으로 줄여 가기 위해서는 (이미 한국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LTV, DSR, DTI 같은 거시 건전성 도구가 적합하다고 봅니다."
▶올초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기술 사이클이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지금까지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실제로 상반기 기술부문 수출이 늘어서 한국경제 성장률이 높은 수준(2.7%)을 기록했으니 그땐 맞았던 셈이죠. 한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예상을 밑돌았지만 그래도 약세였던 소비가 회복되면서 국내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 기술수출이 전년 대비로 5% 이상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은 희소식입니다. 저는 AI 등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추세와 그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국의 수출은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 정보기술(IT) 주기 재평가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중국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한국의 강점이 약해졌다는 취지였는데요. 수출 감소가 한국의 경제성장을 가로막지 않을까요.
"중국과 한국의 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요. 일단 중국의 물가상승률은 매우 낮은 상황입니다. 근원인플레이션은 0.1%, 헤드라인인플레이션은 0.4%였습니다. 이는 수출가격이 별로 오르지 않는다는 뜻이고요, 환율이 현 추세(달러 강세)대로 이어진다면 충국의 수출가격은 더욱 떨어질 겁니다.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같은 나라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확실히 한국 수출에는 긍정적인 소식은 아니죠. 또 저사양 반도체 시장에선 중국의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질 겁니다.
하지만 고사양 반도체 분야에선 여전히 한국이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이 혁신을 거듭해서 기술 분야에서 앞서 나가야만 하는 이유죠. 그래야 중국 같은 저비용 생산국가 뿐만 아니라 대만 같은 고급 기술 생산 국가와도 경쟁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통화정책을 금리 인하 쪽으로 전환(피벗)했습니다.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한은은 통화정책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위치입니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물가는 확실히 안정되고 있지만, 금리를 너무 빨리 떨어뜨리면 주택 시장에서의 레버리지를 키워서 가계부채를 더 늘릴 위험이 있습니다. 한은은 현재 물가가 떨어지고 주택가격 상승세도 꺾였기 때문에 더 수용적인 정책(금리인하)을 펼칠 기반이 마련됐다고 판단한 것인데, 두 목표의 균형 사이에서 훌륭한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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