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카로 밥 한 끼 사먹었다가…"이게 무슨 일" 날벼락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입력 2024-11-03 08:00   수정 2024-11-0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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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카드로 혼자 소액의 식사를 하거나, 주말 퇴근길에 주유를 한 것 '배임죄'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심 법원은 "회사 법카로 밥 한 끼 먹은 게 범죄라는 건 난센스"라며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 법원은 "엄연한 배임"이라며 정반대 판단을 내놔 눈길을 끈다. 인천지방법원 형사부 항소심 재판부는 최근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공판에서 1심을 뒤집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점심 혼밥 두고 "부정 사용" 고소한 회사
2017년 인천에 있는 한 회사에 입사해 자재구매 업무를 맡아온 A씨는 업무용 차량과 함께 주유비를 위한 법인카드(법카)도 함께 받았다. 대전에 가족들이 살지만, 회사가 있는 인천에 숙소를 얻은 A씨는 업무 특성상 주말에 종종 업무용 차량을 이용해 근무하기도 했다. 이 회사 내규에서 출퇴근 목적의 회사 차량 사용과 법카 주유를 허용해줬다.

그러던 중 A씨는 회사로부터 법카 부정 사용으로 고소당했고 결국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됐다. 문제가 된 것은 A씨가 가끔 주말이나 연휴에 가족들이 있는 대전으로 퇴근하면서 4만원 상당의 주유비를 법인카드로 결제한 것이었다. 회사는 그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약 2년 동안 50회에 걸쳐 213만원의 주유 대금을 법카로 결제했다고 주장했다.

한달에 한두번 혼자 아니면 예전 거래처 사람들과 법카로 밥을 먹은 것도 문제가 됐다. 회사는 "일부 식사 금액은 A가 거래처를 기재하지 않았고, 회사 업무를 위해 사용했다고 볼 수 없다"며 A씨가 식사비로 35회에 걸쳐 71만4520원을 '부당이득'했다고 주장했다. 한 끼 평균 2만원 정도인 셈이다. A는 자신이 2020년 11월 대표이사를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과 관련해 고용청에 진정을 낸 것에 대해 회사가 복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 "밥은 먹고 일해야" vs 2심 "범죄 인정" 엇갈렸다
무죄 아니면 유죄밖에 없는 형사 법원의 판단은 1심과 2심이 완전히 엇갈려 눈길이 끌었다.

1심 인천지방법원 단독 판사는 "회사 내규에서도 회사 차로 출·퇴근을 허용한다"며 "A의 자택은 대전이므로 주말에 회사와 자택 사이를 이동한 것도 출·퇴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넓지 않은 우리나라를 감안하면 주유 장소가 회사 소재지가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이득' 의사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배임죄 성립에 필요한 '불법이득의 의사'가 없다는 판단이다.

이어 "매일매일도 아니고 간헐적으로, 어쩌다 한 번 사용해 하루 세끼 중 한 끼를 해결한 점, 주로 점심이나 늦은 저녁에 그것도 한 번에 1만8000원, 3240원 정도 통상적인 밥값을 지출한 점을 보면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는 평가를 할 수 없다"며 "회사가 법카 사용을 알면서도 3년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도 A씨가 법카 사용이 승인될 것이라고 믿은 정당한 사유"라고 판시했다.

1심 판사는 "회사원이 법카를 사용해 밥 한 끼를 먹었다고 배임죄로 처벌한다면 형법의 보충성 원리에도 위반된다"라고 지적하며, 이례적으로 "근로자이자 인간인 A씨는 음식물을 먹지 않으면 회사 일을 할 수 없다. 난센스!"라는 문구를 판결문에 남기기도 했다. 점심이나 늦은 저녁을 먹은 것일 뿐, 유흥주점이나 사우나, 마트 등 회사 업무와 무관하게 사용한 사례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회사 역시 1심 재판 과정에서 ‘고소 취하 및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2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넉넉히 유죄로 인정된다"며 벌금 150만원을 내렸다. 재판부는 "주중에 인천에 거주한 이상 자택은 (가족들이 있는 대전이 아니라) 인천"이라며 "사회통념상 자동차로 2~3시간 거리의 '가족 집'에 다녀오는 것은 출·퇴근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A가 법카 결제 청구서에서 구체적인 거래처를 기재하지 않고 혼자 먹거나, 일부 거래처 아닌 업체를 기재한 사실을 근거로 "개인적 식사 대금을 법카로 결제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라고 꼬집었다.

A는 이에 대해 "회사가 법카 사용을 계속 승인해줬고, 승인 안했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법카는 공적 업무수행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라며 "제때 적발 못하고 경비 처리를 해준 회사가 법카 사용을 승인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노동청 고소에 대한 복수이고 다른 직원도 비슷하게 사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이 사안과 관계없다"며 반박했다.
○"털면 털린다…소소하지만 확실한 범죄"
법카는 관행적으로 소지자에게 사용의 재량이 부여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현장에선 임의 사용(유용)이 암묵적으로 인정된다. 다만 반대로 말하면 회사가 법적으로 걸고 넘어가면 걸린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임직원을 찍어내려면 '법인카드'부터 턴다는 말도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리 법원은 법카 비위 사건에서 비위행위가 지속·상습적이라면 금액과 관계없이 제재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다. 계속 사용하는 법카 특성상 근로자에겐 다소 불리한 점이다.

부당사용을 한 사람이 회계 혹은 관리 감독을 하는 지위에 있는지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감독·회계 업무를 수행하는 임직원이라면 소규모 금액만 부정 사용해도 해고 정당성을 인정하는 추세다. 실제로 법원은 물품 관리자가 28만원가량을 초과 수령한 사안에서 파면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법인카드 부정사용은 범죄가 아니더라도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인카드의 업무 목적 외 사용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인사팀 입장에서는 법카 부정 사용이 포착돼 징계까지 가려면 실무상 두 가지를 신경 써야 한다. 먼저 기존 관행이다. 일부 실비 사용 등이 관행화되거나 묵인되는 분위기라면 형평성 문제로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로는 문제를 삼는 사용처 등을 뭉뚱그려서 안 된다. 개별적인 사용처를 하나하나 조사해 부정 사용 사실을 입증하지 않으면 부정 사용을 인정받을 수 없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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